[책과 길] 인천 만석동서 30년, 가난한 아이들 성장 이야기… 김중미 첫 에세이 ‘꽃은 많을수록 좋다’

입력 2016-02-25 19:06
군에 간다며 우울해 하는 조카에게 아는 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들과 부대낄 수 있는 기회를 고맙게 여겨라.”

어디 군 뿐이랴. 김중미 작가(53·사진)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그런 책이었다. 괭이부리말은 인천 만석동에 있는 빈민지역의 다른 이름이다. 작가는 스물넷에 이 곳으로 와서 공부방을 차리고 정착했고 10년이 됐을 때 만난 이들을 담아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냈다. 그리고 딱 30년이 돼 첫 에세이 ‘꽃은 많을수록 좋다’(창비)를 내놨다.

에세이에 나오는 이들은 김중미를 ‘이모’, 그녀의 남편을 ‘큰삼촌’이라고 부르던 만석동의 가난한 아이들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그곳 아이들이 일그러진 자본주의 나라 한국에서 커서 어떤 삶을 사는지 엿볼 수 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성공, 1등, 우등, 모범과는 거리가 먼, 지질하고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의 성장 이야기”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사고치고, 본드를 흡입하고, 소년원을 드나들고, 돈 잘 버는 조폭을 꿈꾸기도 하는 아이들…. 그래서 허구한 날 울며 지냈던 그 시절 작가가 아이들을 위해 다짐할 수 있었던 건 한 가지뿐이었다고. “네가 정 그 벼랑으로 뛰어내리겠다면 내가 같이 뛰어내릴게.”

대학이 필수가 된 사회라지만, 괭이부리말에선 대학 문턱을 못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제 손해를 남에게 넘기지 않고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비싼 권리금을 주고 택배 일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한 영수. 그가 “이게 다 공부방 탓, 이모들 탓”이라며 “못살아도 나쁜 짓 하며 사는 건 아니라고 배워 그냥 권리금을 떼였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코끝이 시큰해진다.

모두가 궁금해 하는 점. 작가는 왜 하필 가난한 동네에서 공부방을 시작했을까. 대학 졸업 후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배웠다고 했다. 떼인 입원비를 받으려고 찾아간 집에 오히려 쌀을 넣어주고 돌아오면서, 중졸로 상경해 공장에서 다닌 지 한 달 만에 손가락이 잘려나간 소년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386운동권이 얼마나 많은가. 1980년대 시작한 도시빈민운동을 현재적 삶으로 이어가는 태도는 놀랍고 숭고하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한 삶이란 경쟁에서 이겨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지만 사실 사람답게 살자면 삶은 고달프고 힘겹고 아프고 슬픈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던지니 작가가 말한 대로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책일 수 있겠다. 그런 불편함이 필요한 시대이며 김중미가 귀한 이유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