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기관 오명 벗고 ‘따뜻한 공공기관’ 거듭난다… 한국에너지공단 ‘에너지 바우처’ 지원 사업

입력 2016-02-25 18:48 수정 2016-02-25 21:35
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 한국에너지공단에 설치된 에너지바우처 콜센터 앞에서 공단 변종립 이사장(오른쪽 세 번째)과 콜센터 관계자들이 개소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한국에너지공단 변종립 이사장이 지난 24일 강원도 춘천반석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에너지나눔활동을 갖고 난방효율 개선사업 실태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충남 보령에 사는 김진수(77·가명) 할아버지의 집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등유값 걱정이 먼저 앞서다보니 어지간한 추운 날씨에도 보일러를 돌리지 않는 게 습관이 됐다. 창문 곳곳에 단열용 '뽁뽁이'를 붙이고 방바닥마다 이불을 깔아놓고도 부족한 날엔 전기장판에 의지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렇게 버텨도 매월 등유값은 18만원 수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역으로 전기장판 사용량이 늘어나 보통 8000원 남짓 나오던 전기요금마저 겨울에는 4만원이 훌쩍 넘곤 했다. 그랬던 김 할아버지 집의 올 겨울은 훈훈했다. 지난해 말 처음 도입된 에너지복지제도인 에너지바우처 수급자로 선정된 덕에 등유비 10만2000원(2인가구 기준)을 지원받게 됐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는 "추운데서 자고 일어나다보니 항상 몸이 뻣뻣하게 굳었는데, 올 겨울엔 좀 더 따뜻하게 자니 조금 젊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가진 것이 없는 이에게 추운 겨울은 가장 서러운 계절이다. 외로운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변 이들의 도움을 통한 따뜻한 온기가 가장 절실한 때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이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에너지바우처 사업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최소한 난방비 없어 추워 떨지 않기를”



에너지공단에 따르면 한국은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하는 에너지빈곤가구가 192만 가구(2012년 기준)에 달한다. 소득수준에 비해 난방비 부담이 과도하거나 적정수준의 난방을 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많다는 얘기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에너지바우처 지원 사업은 이들 중 55만명에 달하는 에너지 취약가구에게 최소한의 겨울철 난방을 보장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지원 대상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 의료급여 수급자 중에서도 겨울철 추위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인(만65세 이상)이나 영유아(만6세미만) 또는 장애인(1∼6급)이 포함된 가구로 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동안 에너지 관련 지원 사업이 대부분 가격 할인이나 요금 보조, 난방 시설이나 주택 단열 개선 등 간접적 지원에 국한하다 보니 이용자 입장에서 지원받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 등도 감안했다. 전기, 도시가스, 지역난방, 등유, LPG, 연탄 등 난방에너지 종류와 무관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전자카드방식의 바우처로 지급하고, 카드 결제가 어려운 연령층 등을 고려해 지역난방이나 전기 등을 이용할 경우에는 요금을 자동 차감하는 가상카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덕분에 올 겨울 처음 도입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말까지 신청가구는 52만가구에 달해 전체 지원대상 추정가구(55만가구)의 95%에 달하는 접수율을 보였다. 발급받은 바우처는 올해 3월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바우처를 다 쓰지 못해 잔액이 남았더라도 4월 사용분에 청구되는 전기요금에서 일괄 차감되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는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한전,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규모가 큰 에너지공기업은 물론 기타 에너지 회사들과도 손을 맞잡아 에너지바우처 수급 편의를 높인 것이 실효성을 높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지자체와 2만3000여개의 에너지공급사, 주택관리공단, 국민행복카드사, 각 지역의 아파트관리사무소 등까지 참여한 덕분에 에너지바우처 전달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했다고 자평한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관리’ 규제 기관에서 ‘에너지 나눔’ 실천 주체로 거듭나기

에너지공단은 지난해 7월 사명에서 ‘관리’라는 글자를 떼어냈다.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에너지공단’으로 바뀐 것을 계기로 규제기관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회에 공헌하는 ‘따뜻한 공공기관’으로 변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최근 에너지정책이 공급에서 수요관리로 전환됨에 따라 공단의 역할이 더욱 커진 만큼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종합 에너지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면서 “이와 함께 ‘대국민 공공파트너’로 거듭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하고, 먼저 찾아가며, 협업하고 소통하자”는 에너지공단의 ‘에너지나눔’ 캠페인은 이 같은 변화의 결과물이다. 에너지바우처 사업처럼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정책사업 외에도 공단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크고 작은 사회 공헌 사업들도 ‘에너지 나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기존에 공단 단독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사회와 공공기관, 정부 등이 협업해 성과를 이뤄내는 모델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에서 열린 ‘메리윈터’ 에너지 나눔 캠페인이 시작이다. 공단은 물론 귀뚜라미그룹과 한국열관리시공협회, 에너지시민연대, 용산행복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이 협업해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찾고, 그 집의 난방 배관 교체, 보일러 설치 등을 도왔다.

2월 중에도 공단 임직원과 귀뚜라미그룹, 열관리시공협회 등이 함께 ‘춘천반석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기존의 전기판넬을 철거하고 보일러와 바닥 난방 배관을 설치하는 사업을 펼쳤다. 난방 효율을 개선함으로써 실질적인 에너지 나눔을 실천한 셈이다. 에너지공단은 올해에도 전국 7곳을 대상으로 한 ‘통합형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속가능한 기부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2014년에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인 굿윌스토어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지난해 9월에는 장애인들의 소득 창출을 지원하기 위한 식기세척기, 청소기, 라디오, 에어컨,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 등을 굿윌스토어에 기증하기도 했다.

2011년부터 추진해온 1사1촌 봉사활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공단 임직원 40여명이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음 점리마을을 방문해 물품 기증 및 일손돕기 활동을 벌였다.

에너지공단 변종립 이사장은 “에너지는 사용할수록 줄어들지만 사회공헌활동은 나눌수록 더 커진다”면서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공단이 가진 에너지를 주변의 이웃들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고 국민 맞춤형 복지를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