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중력파, 우주의 시원에서 발신한 ‘시그널’

입력 2016-02-26 04:03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미국의 대형 과학 프로젝트인 라이고는 워싱턴주 핸퍼드와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에 관측소를 건설했다. 이 두 곳에서 2015년 9월 14일 중력파를 역사상 처음으로 검출했다. 사진은 라이고 리빙스턴 관측소. 동아시아 제공
중력파를 확인한다는 건, 600만 광년 떨어진 처녀자리 성단에 사는 한 외계인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모습을 지구에서 알아채는 것과 같다. 극히 미약한 이 신호를 검출하는데 100년이 걸렸다. 미국은 1조원 가까이 투자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열린 중력파 검출 발표 기자회견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도대체 중력파가 뭐기에?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은 중력파를 찾느라고 분투해온 과학계 100년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중력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무엇보다 이 역사적인 발견에 대한 한국인 과학자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값지다고 하겠다. 저자 오정근(44)씨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총무간사를 맡고 있다. 이번에 중력파 검출 소식을 발표한 라이고 과학협력단의 멤버이기도 하다.

중력파란?

질량을 가진 물질은 중력의 영향을 받고 이 물질이 가속운동을 하면 항상 중력파를 발생시킨다. 그러면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이 중력파를 발생시키고 있는가? 그렇다. 그럼 우리는 매일매일 일상에서 중력파를 느끼고 사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중력파의 세기가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다.

중력파의 세기는 얼마나 미약한가?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인 처녀자리 성단 근처에서 중성자별 쌍성이 약 1㎞의 거리를 두고 회전하면서 병합 과정에 있다면 그 중성자별 쌍성이 방출하는 중력파의 크기가 대략 ‘10의 -21승’ 정도다. 10의 -21승은 태양만한 물질이 수소원자 반지름만큼 움직이는 크기쯤 된다.

중력파는 극히 미약한 신호여서 직접 검출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질량이 매우 큰 천체가 발생시키는 천문학적 사건을 통해 생겨난 중력파라면 실험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

100년만의 발견

1916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파의 존재를 예견했다. 중력파를 직접 검출하려는 도전은 1960년대 미국 메릴랜드대 조지프 웨버(1919∼2000)에 의해 시작됐다. 웨버는 ‘웨버 바’라고 불리는 중력파 검출기를 제작하고 실험했다. 1969년 웨버의 실험 결과가 발표되자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웨버 방식의 ‘바 검출기’를 구축하는 그룹이 세계에 10개 넘게 생겼다. 스티븐 호킹(1942∼), 킵 손(1940∼) 등도 중력파 검출에 뛰어들었다. 중력파는 1984년 헐스-테일러 펄서의 공전주기 감소에 대한 연구로 간접적으로 확인됐다. 가장 잘 알려진 중력파의 발생원은 쌍성계로 서로 공전을 하는 두 개의 별은 중력파를 발생시키는데, 중력파 방출에 의해 에너지를 잃고 쌍성계의 공전궤도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관측됐다.

과학자들은 지난 50여 년 동안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중력파의 검출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잡음 신호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 지구적으로 더 나은 중력파 검출기를 건설하려는 다양한 거대 프로젝트들이 전개됐고, 현재는 우주 기반의 위성 검출기도 제작되는 중이다. 중력파 검출기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민감한 검출기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라이고 프로젝트는 2002년 첫 가동됐다. 라이고의 목표 민감도는 10의 -21승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라이고 검출기는 업그레이드를 거듭했다. 2015년 9월 14일은 어드밴스드 라이고의 공식 가동이 예정된 날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아침, 놀랍도록 깨끗하고 명확한 강도를 가진 중력파 신호가 검출됐다.

이것이 진짜 중력파란 말인가? 라이고 과학협력단은 물리학자, 천문학, 공학자, 응용물리학자, 컴퓨터과학자 등 전 세계 130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이를 검증했다. 약 440메가파섹(약 14억 광년) 밖에 떨어져 있는, 각각 태양의 36배와 30배 질량을 가진 블랙홀 2개가 충돌하여 병합하는 과정에서 방출된 신호라는 게 확인됐다.

중력파 발견이 왜 중요한가?

저자는 중력파 발견의 의미를 전자기파에 빗대 설명한다.

“우주에서 오는 전파의 발견은 전파천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탄생시켰고, 가시광선에 의존하던 광학관측에 더하여 전파라는 새로운 관측 수단을 선물해 주었다. 또 전자기파의 발견과 응용을 통해 인류는 오늘날 현대적인 무선통신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인류는 중력파 발견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을 갖게 됐다. “중력파가 이용되는 새로운 천문학은 전파의 영역이 미치지 못하는 우주 초기나 강한 중력의 환경에서 발생하는 물리학과 천문학에 유용하고 방대한 데이터들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