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는 국민에게 ‘질병관리본부(질본)’라는 기관명을 각인시켰다. 정부는 여러 실패를 반성하며 질본을 독립적 차관급 기구로 격상시켜 감염병 컨트롤타워를 맡겼다. 그리고 본부장에 정기석(58) 한림대성심병원장을 임명했다. 호흡기질환 권위자인 정 본부장은 취임하자마자 지카바이러스 대응을 지휘하고 있다. 감염병 대응체계를 어떻게 정비해 갈 것인지, 23일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나 물었다. 그는 메르스 사태의 최대 실패로 ‘초기 대응’을 꼽았다.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선제적 대응,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카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란 관측이 있다. 동의하나. 첫 환자가 나올 경우 대응 매뉴얼은 어떻게 준비돼 있나.
“감염자 80%는 증상이 없다. 바이러스 대부분이 그렇다. 증상 없이 저절로 낫는 사람까지 검역단계에서 걸러낼 순 없다. 언젠간 들어올 것이다. 중국은 벌써 세 번째 유입됐다. 하지만 메르스와 달리 사람 간 감염은 없고 모기를 통해 옮는 게 문제인데 그건 차후의 일이다.
들어올 경우 대응 계획은 수립돼 있다. 첫 환자가 나오면 격리까지는 아니라도 1인실 등에 입원시켜 면밀히 관찰할 것이다. 한국인 첫 케이스의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 유입 경로를 추적한다. 검역단계에서 거를 수 있는 거였는지 살펴 대응 수위를 높일 것이다.”
-감염병 대응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설정해 대비해야 할 텐데, 한국의 기후와 환경에서 지카바이러스가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토착화하는 것이다. 풍토병이 되는 것이다. 치사율이 낮고 치료는 되더라도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어떻게 움직이는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 피에서는 없어지지만 체내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는 동네 숲에서, 웅덩이에서 모기에 물렸는데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뎅기열 환자가 한 해 200명쯤 생긴다. 대부분 해외에서 감염돼 들어온 경우이고, 올해는 벌써 69명이다. 그래도 뎅기 매개 모기가 국내에서 이를 전파하는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다. 뎅기의 추이가 지카의 향방과 유사할 것으로 본다.”
-최근 아르헨티나 의사들이 중남미 소두증은 지카바이러스가 아니라 그 모기를 잡기 위한 몬산토 살충제 때문이란 주장을 내놨다. 당국에서는 부인했는데.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소두증은 아직 원인을 모른다. 바이러스 때문인지, 완전한 유전병인지. 브라질이 유독 많지만 우리나라도 (소두증 아기가) 1년에 몇 명씩 태어난다. 살충제로 인한 환경호르몬 같은 것이 원인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연구가 필요한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유전자 변형 모기로 지카바이러스를 퇴치하자는 주장이 있다. 영국 업체에서 개발해 실제 방출하기도 했다. 호주에선 모기에 월바키아라는 박테리아를 감염시켜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실험도 하고 있다. 이런 게 모기 매개 바이러스 차단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시도는 아주 위험하다. 원리는 이렇다. 유전자 변형 모기를 대량으로 풀어서 기존 모기와 교미해도 알을 낳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수많은 모기를 그렇게 퇴치하기도 어렵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또 다른 변형을 일으킬 경우 그야말로 재앙이 될 수 있다. 아주 거대한 모기가 나오거나 모기의 독성이 강해질 수도 있다. 생태계가 완전히 교란에 빠질 수 있다.”
-올여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 우리 선수단을 보내도 괜찮을까.
“아직 결정하기는 섣부르다. 브라질에서 22만명을 풀어 모기를 잡고 있다. 위험하다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차원에서 결정할 것이다. 가임 여성 선수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파견하더라도 선수단 보호를 위해 역학전문가나 감염병 전문가가 동행해야 할 듯하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가 가장 잘못한 것 하나만 꼽는다면.
“초기 대응이다. 초기 격리를 확실히 했어야 한다. 병원 전체를 격리할 수 없었다면 적어도 환자가 있는 층은 격리했어야 한다. 환자의 동선을 차단하는 게 초기 대응의 핵심이다.”
-그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메르스라는 병을 정부는 알고 있었다. 일선 의사들에게까지 전파되지 않았다. 호흡기내과 전문의로 평생 폐렴을 보며 살아온 나도 몰랐다. 나 같은 의사들에겐 관련 정보가 사전에 도착하도록 하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또 조금 과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 폐렴은 처음 봤기 때문에 당시 나라도 적극적인 조치를 못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지카 등 감염병에 대해선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지식보다 더 수위를 높여 대응할 생각이다.”
-질병관리본부장이 되기 전까지 병원장이었는데, 메르스 사태 때 숱하게 지적됐던 한국식 문병·간병문화가 달라졌다고 보나.
“약간 바뀌는 것 같다가 다시 돌아간 듯하다. 내가 근무한 병원에선 보호자 출입증을 발급했다. 하지만 출입증을 여럿이 돌려가며 사용하면 어쩔 수가 없다.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감염병 전문병원은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아직 용역작업이 진행 중이다. 메르스 때 병원들이 환자를 안 받으려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독립 건물의 전문병원을 만들어 환자를 한꺼번에 수용하고 의료진이 같이 들어가 진료하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다. 인천이나 제주처럼 공항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도 필요하다.”
-메르스에 이은 다음 감염병으로 주시하고 있는 것은.
“지금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라싸열이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유행하는데 언젠가 들어올 수 있다고 본다. 지카와 증상이 비슷하다. 치사율은 1% 정도. 다행히 치료약은 있다. 현재 유사 증상자가 나타나면 라싸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웨스트나일은 미국에서 이미 토착화됐다. 우려되는 건 웨스트나일을 옮기는 모기가 우리나라에 흔하다. 지카를 옮길 수 있는 흰줄숲모기는 우리나라 모기 100마리당 한두 마리꼴인데, 웨스트나일을 옮기는 모기는 수십 마리다.”
-100세 시대다. 감염병 외에 만성질환 관리는 어떤 방향으로 해나갈 생각인가.
“질본이 메르스 때문에 주목을 받아 감염병만 보는 줄 아는데 말 그대로 질병관리본부다. 질병을 조절하고 예방까지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암, 심뇌혈관질환, 당뇨병, 만성폐쇄성폐질환을 4대 질환으로 규정했다. 암은 국립암센터에서 담당하고 질본은 나머지 세 질환에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보건복지부에서 국민건강증진 5개년 계획을 세워 놨다. 이를 체계적으로,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국민의 의료 부담을 줄일 수 있다. 100세 시대라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아직 70세 정도에 불과한 ‘건강수명’이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정기석 질병관리본부장] “감염병은 과하다 싶을 만큼 적극적 대응 필요”
입력 2016-02-26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