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파고든 ‘범죄의 유혹’ 덫에 빠진 청춘들… 합숙훈련 후 아파트 털고 알바하던 매장 상품 ‘슬쩍’

입력 2016-02-25 04:03
김모씨가 지난해 11월 서울 용산전자상가 카메라렌즈 매장을 털고 있는 모습. 김씨는 이 매장 종업원이었다. 서울 용산경찰서 제공
극심한 취업난에 내몰려 아르바이트나 비정규 일자리를 전전하는 일은 이 시대 젊은이의 서글픈 자화상이 됐다. 그러다 범죄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는 ‘빗나간 청춘’들이 있다.

구직사이트를 드나들던 이들이 절도조직을 만들고 수도권 아파트를 누비며 억대 금품을 털다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합숙까지 하면서 절도와 도주 수법을 익혔다. 일하던 매장의 물건을 빼돌려 처분한 간 큰 알바생도 붙잡혔다. 모두 20, 30대다. 먹고살기 힘들어 저질렀다고 보기엔 수법이 치밀하고 금액도 상당하다. 이들의 손엔 ‘수갑’만 남았다.

구직자에서 절도범으로

“돈 되는 일은 뭐든 합니다.” 도모(26)씨는 절박했다. 건축자재 운반 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지만 남은 건 수천만원의 빚뿐이었다. 막막해 구직사이트를 찾았다. 마침 전과 11범의 김모(52)씨가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씨는 “주 5일제 근무로 1주일에 500만∼1000만원을 벌게 해주겠다. 아파트 터는 일이다”며 도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김씨는 도씨에게 접근한 것처럼 이모(33)씨와 성모(26)씨에게도 연락을 했다. 이들은 경기도 부천시의 한 모텔에서 합숙을 했다. 아파트 현관문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철사를 넣어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절도수법을 익혔다. 이씨와 성씨는 집을 터는 ‘일꾼’, 도씨는 망을 보는 ‘안테나’ 역할을 맡았다.

김씨는 대포폰을 주면서 행동 규칙도 일러줬다. “지급한 대포폰은 보고를 할 때만 전원을 켜고 평소엔 꺼놓는다. 매일 오전 7시30분에 대포폰으로 출발 보고를 한 뒤 낮 12시에 오전 범행 성공 여부를 보고한다. 도주할 때는 범행 지역에서 택시를 3번 갈아타고 접선장소로 이동한다. 범행을 중단하거나 임의탈퇴 시 주민등록증 사본을 경찰서로 보낸다.”

이런 방법으로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5일까지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아파트를 돌며 19회에 걸쳐 1억600만원 상당을 훔쳤다. 하지만 범행을 모의하던 모텔에서 경찰에게 꼬리를 밟혔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총책 김씨와 이씨를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반성한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쓴 성씨와 도씨는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에게서 장물을 사들인 혐의(장물취득)로 홍모(68)씨도 불구속 입건됐다.

알바들의 간 큰 배신

양모(20)씨는 지난해 1∼7월 서울 중구 대형백화점에 입점한 유명 등산복 매장에서 일했다. 백화점 근처에 있는 의류창고를 드나들던 그는 수백상자 중에 일부를 훔쳐도 알아채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비밀출입구도 미리 봐뒀다.

양씨는 퇴사를 하고 5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에 범행을 시작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 사이에 비밀출입구를 통해 창고로 들어가 박스째 들고 나왔다. 이어 콜택시를 타고 경기도 안양으로 가 심모(20)씨에게 한 벌에 10만∼15만원을 받고 넘겼다. 양씨는 인터넷 중고품 직거래 카페 ‘중고나라’에서 심씨가 중고 의류를 파는 것을 보고 접촉했다고 한다. 심씨는 양씨에게 사들인 가격에 10만원씩 더 붙여 낱개로 팔았다.

양씨는 이런 수법으로 최근까지 5차례나 창고를 털어 3800만원 상당의 의류 119점을 훔쳤다. 지난 19일 밤 10시쯤 또 창고를 찾았다가 잠복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군 입대를 앞두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양씨를 야간 건조물 침입 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심씨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심씨는 훔친 물건인지 모르고 샀다고 주장하지만 장물임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형사처벌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서울 용산경찰서가 양씨와 같은 죄목으로 구속한 김모(29)씨는 고가 카메라 렌즈 30여점(1400만원어치)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10∼25일에 5차례 서울 용산전자상가 내 카메라렌즈 전문매장을 털었다. 이 매장은 자신이 그해 2월부터 10월 말까지 일한 가게였다.

김씨는 매장 출입카드를 반납하지 않고 갖고 있다가 범행에 사용했다. 훔친 물건은 대부분 ‘중고나라’를 통해 현금거래로 처분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찜질방 등에서 생활하던 그는 최근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붙잡혔다.

심희정 강창욱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