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땅서 난민들이 가꾸는 ‘희망의 포도’

입력 2016-02-25 04:01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소도시 코를레오네의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 포도농장에서 23일(현지시간) 아프리카 감비아 출신의 난민 바두(24)가 열심히 포도나무의 가지를 치고 있었다. 이 농장은 시칠리아 마피아가 30년간 소유했던 땅이다.

“살바토레 토토 리나(시칠리아 마피아 수장)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영화 ‘대부’는 네 번이나 봤어요. 처음엔 ‘마피아들이 와서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슨 소리가 날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일했죠.”

포도농장의 이름인 코사 노스트라는 악명 높은 시칠리아 마피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쟁과 폭력을 피해 유럽으로 건너온 난민들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오래된 ‘마피아 근거지’에서 일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1992년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탈리아는 이듬해 ‘야수’라는 별명을 가진 전설적인 시칠리아 마피아 거목 리나를 체포했다. 이후 경찰이 관리하게 된 리나 소유의 땅 50만㎡에선 지금 난민들에게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동시에 유기농 오일과 와인 등의 생산량을 늘리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바두는 이곳에서 일하며 희망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프로젝트 매니저 안드레아 카멜리니는 “이 프로젝트는 마피아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활용하는 한 가지 예가 되고, 사회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발이 될 것이며 경제 성장에도 이바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상품엔 과거 마피아가 소작농을 착취해 온 이 땅에서 적법하게, 그리고 ‘부정한 이득 없이’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특별한 라벨이 붙여진다.

이곳에서 일하는 난민들은 옷과 음식, 잠자리뿐만 아니라 한 달에 600유로(약 82만원)의 월급도 제공받는다. 농장 관리 담당자인 칼로제로 파리시는 “이 땅은 역사적으로 소작농들이 일궈왔고, 지주들은 마피아를 활용해 소작농을 착취해 왔다”면서 “이제는 땅을 사회에 돌려줄 때”라고 말했다.

난민들로 하여금 이곳을 일구게 하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파리시는 “과거에 가장 가난하고 사회 변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소작농이라면, 지금은 난민이 그런 사람들”이라며 “그들 옆에서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농장 일을 마친 오후, 자피르(38)가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는 분쟁지역인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왔다. 아내와 함께 시칠리아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자피르는 이렇게 덧붙였다. “카슈미르에도 마피아가 있어요. 무자헤딘(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은 일종의 조직폭력단이죠. 하지만 이탈리아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조국이 갈 길이 얼마나 먼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