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회담은 유엔 안보리의 북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데 단호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6자회담 재개와 평화협정 논의 등 대화를 병행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대화보다 제재에 초점을 맞춰 북한 정권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차이가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중국이 제재 수위에 합의를 이루면서 북한 제재를 담은 안보리 결의안 처리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케리 장관은 왕이 부장과 나눈 회담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응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남중국해 갈등과 시리아 내전, 기후변화 등 다른 현안들에 대한 설명은 뒤로 밀렸고 짧았다. 그만큼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양국의 공통 관심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얘기다. 당초 두 사람의 회동은 다음 달 말 핵안보정상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양자 간 정상회담 의제를 사전 조율하기 위한 만남이었다.
케리 장관과 왕이 부장은 최근 한 달 사이 세 차례 만났으나 북한 제재의 수위와 내용을 놓고 번번이 이견을 보였다. 케리 장관은 최근까지도 북한 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케리 장관은 그러나 이날 회담을 마친 뒤에는 북한 제재를 위한 안보리 결의안 논의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왕이 부장도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이 주도한 안보리 제재 결의안 초안에 대해 중국이 상당한 동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두 장관은 안보리의 새 결의안이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제재를 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케리 장관은 “새 안보리 결의안은 도발-제재가 반복되던 예전의 결의안 수준을 뛰어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새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면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진전을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국 장관이 북한의 제재 수위를 높이기로 합의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나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자는 의견을 나란히 밝힌 것은 의외였다. 미국이 강도 높은 제재를 반대하는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제재와 대화의 병행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중국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케리 장관은 또 중국과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서도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사드의 목적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한국과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면 사드 배치는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 발표했으나 미·중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돌연 공동실무단 운영 약정을 미뤘다.
케리 장관은 나아가 비핵화를 전제로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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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왕이 회담] “대북제재 수위 높이면서 대화도 병행”
입력 2016-02-24 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