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4일 4·19국립묘지에 영면했다. 4·19혁명 주역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 전 총재 영결식은 오전 8시 서울성모병원 빈소에서 김삼환 목사 등이 주재한 발인예배로 진행됐다. 발인예배에는 장례위원장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권오을 전 의원, 문정수 전 부산시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운구 행렬은 고인이 생전 7선 의원을 지내며 많은 시간을 보낸 국회에 들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이 고인의 마지막 등원 길을 배웅했다. 생전 고인의 뜻대로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유해는 4·19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이 전 총재는 1960년 고려대 상대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에 앞장섰다. 7년 뒤 30세에 신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뒤 11대 국회를 제외하고 7대부터 14대까지 내리 당선됐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김영삼(YS) 전 대통령 등 야권의 거목과 정치적 동지로 활동했지만 ‘양김의 그늘’ 아래에서 부침을 겪기도 했다. 1979년 신민당 총재 경선 당시 이 전 총재는 YS 당선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 YS와 결별했고, 당시 의원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덕 이철 전 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일명 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1992년 DJ와 손 잡고 민주당 공동대표를 맡았다가 DJ가 대선에서 패해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제1야당 총재를 지냈고 차기 대권주자로도 꼽혔다. 3년 뒤 DJ가 정계 복귀를 선언한 뒤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창당에 참여했다가 다시 민주국민당을 창당했다. 2002년 대선에서 부산상고 후배인 노 전 대통령을 도왔지만 2007년 대선 때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 선언을 했다. 4·19혁명공로자회장, 4·19민주혁명국민문화제 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 전 총재는 별세 전 자서전 ‘우행(牛行)’ 탈고에 매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일 오후 1시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4·19 정신 남기고 영원히 잠들다… 고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영결식
입력 2016-02-24 19:30 수정 2016-02-25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