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우리 군은 어디 있나

입력 2016-02-24 17:33

때로 어린 친구들의 지적이 따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종종 고민을 들어주는 고등학생과 지난주 이야기하다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았다. “미국 무기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는 기사를 왜 그렇게 많이 쓰세요?”

상담해주고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 이 친구는 가끔 필자가 쓴 기사를 거론한다. 북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기사도 꼼꼼히 읽었나 보다. 한반도에 전개된 미 전략폭격기 B-52와 최첨단 전투기 F-22, 핵항공모함에 대해 줄줄 읊어댔다. 필자는 미국의 확고한 한반도 방어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게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질문 요지는 우리나라 군은 뭐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난 2012년 4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뒤 군은 국산 미사일 ‘현무-2, 3’을 공개했다. ‘현무-3’은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정밀도와 타격력을 갖춘 순항미사일이다. 한 국가가 지닌 전략무기는 전력이 드러나기 때문에 좀체 공개되지 않는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정책기획관은 “북한 미사일 위협 등 도발적 책동에 우리 군의 정확한 능력을 알려 흔들림 없이 대처하고 있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북한은 그때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서울의 모든 것을 날려보낼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이 2015년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SLBM) 시험 사실을 밝혔을 때는 우리도 잠수함에 사거리 1000㎞가 넘는 순항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군의 독자적인 대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의 전략 자산들이 줄줄이 한반도에 출격했지만 우리 군은 지원 역할만 했다. 미국 무기들이 와야만 북한 도발이 억제된다는 인식이 깊어진 것 같다. 국방부의 대책은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였다. 한반도를 지키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불분명하게 느껴질 만하다.

군도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기술이 우리 군 준비보다 빨랐을 수 있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해서는 사실상 미국 핵우산 정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독자적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매년 30조원 이상의 국방비를 쓰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 대응을 전적으로 미국에 맡겨놓은 꼴이 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비대칭 전력이란 상대방에게 절대적인 강점이 될 수 있는 전력을 의미한다. 북한이 이런 전력 확보에 힘을 쏟아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난한 북한은 우리처럼 다양한 무기를 갖출 여건이 못 된다. 그래서 유리한 분야를 수십년간 일관되게 육성했다.

군사 전문가들이라면 이를 파악하고 북한이 두려워할 우리만의 비대칭 전력을 키웠어야 했다. 한데 전문가들이 적었던 모양이다. 군은 북한 도발에 단선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제대로 못했지만 장기 전략을 세워 북한을 압도하는 데도 실패했다.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이 잘된 용병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잘된 것 중의 잘된 것이다. 상책의 용병은 적의 계략을 공격하는 것이고 차선은 적의 외교관계를 공격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군대를 공격하는 것이며 그 아래의 정책은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성을 공격하는 법칙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군사학의 고전 ‘손자병법’이 가르치는 방책이다. 군이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을 타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은 성을 공격하는 최하수라고 볼 수 있다.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다. 전력증강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또 큰 돈 들여 도입한 전력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도 깊이 고심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국방부가 주장하는 ‘창조국방’의 핵심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