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은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을 기리는 이인성미술상을 주관한다. 하지만 이인성 작품은 한 점도 소장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대구 기반 컬렉터인 유성건설 김인한(67) 회장의 기증으로 ‘소장품 콤플렉스’를 벗게 됐다. 이인성 유화 2점을 포함한 총 578점의 대규모 기증은 기증 문화가 척박한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김인한 컬렉션 하이라이트전’을 2월 중순 개막한 김선희(53) 관장을 지난 22일 대구 수성구 산자락의 미술관 관장실에서 만났다.
“뉴욕현대미술관(모마)이 유명한 건 컬렉션이 좋기 때문이지요. 미술관의 격은 기증자들이 만드는 겁니다. 지난해 하정웅 컬렉션(58점)도 동시에 기증받았으니 대구미술관은 좋은 미술관으로 설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셈입니다.”
300점 남짓했던 컬렉션은 두 사람의 기증으로 1000점으로 불어났다. 김 회장의 기증목록에는 일제 강점기 서양화가 김인성, 이인성미술상을 받은 안창홍 등 근현대 작가 141명의 구상 및 추상 작품이 대거 들어있다. 105억원에 달한다. 세계적 화가 이우환 화백의 연작 ‘조응’과 ‘바람과 함께’는 각각 5억∼10억원 상당이다. 이인성의 ‘향원정’ ‘연못’과 변종하, 곽훈 등 대구·경북의 근현대 작가 작품도 포함돼 있다.
신혼시절 아내가 사달라는 그림을 사준 게 계기가 돼 미술품에 매혹됐다 김 회장. 외국을 여행할 때 마다 미술관을 찾는다는 그는 할머니와 손자가 여성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를 자연스럽게 화제로 올리는 문화를 보면서 부러웠다. 컬렉션을 훗날 미술관에 기증할 것이라고 결심했다.
왜 지금, 대구미술관일까. 김 관장은 “대구미술관이 신뢰감을 준 것 같다”고 했다. 이는 김 관장 개인에 대한 신뢰에 다름 아닐 것이다. 5월로 취임 2년을 맞는 김 관장은 개관 5년에 불과한 신생 지방미술관을 전국적 미술관으로 키운 주인공이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불도저 리더십이 무기다. 광주에서 여고를 나왔고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일했던 그는 취임 당시 ‘대구미술관장이 된 광주여자’로 지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더 중요한 건 ‘아시아적 스펙’이다. 40대 중반에 일본 모리미술관, 중국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등 아시아 현대미술의 핵심 미술관에서 수년씩 일했다.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전’(2013), 중국 ‘쟝샤오강전’(2014), 영국 ‘잉카 쇼니바레전’(2015) 등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작가들의 개인전을 유치할 수 있었던 건 인맥과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서울에서도 성사시키기 어려운 전시여서인지 쿠사마 야요이전 때는 석 달 동안 33만 명이 다녀갔다.
도심과 떨어져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인데도 말이다. 동대구역에서 대기하던 택시기사들이 ‘대구미술관에 무슨 경사가 났느냐’고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게 당면 과제다. 김 관장은 “대구 시내를 관통하는 모노레일 전철 2단계 공사에서는 미술관까지 노선이 연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대구=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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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품격은 기증자들이 만드는 것”… ‘김인한 컬렉션 하이라이트전’ 대구미술관 김선희 관장
입력 2016-02-24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