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명의로 내놓은 중대 성명은 지난 20일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결정 이후 가장 수위가 높다. 청와대 등 국내 주요 기관은 물론 미국 본토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군 기지까지 타격 대상으로 언급하며 극단적으로 군사 도발을 예고했다.
이르면 이번 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의결이 예정된 상황에서 북한이 이 같은 강경 발언을 내놓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정은 참수작전’ 등 한·미 간 군사적 압박으로 궁지에 몰리자 내놓은 맞불용 발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성명에서 “조선의 광명성 4호 발사에 혼이 빠진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이 최후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 최고수뇌부를 겨냥한 참수작전을 통해 체제 붕괴를 실현해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상황을 언급한 뒤 “극악무도한 참수작전과 체제 붕괴 책동은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의 극치이다.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혁명무력이 보유한 모든 전술타격 수단들은 적들의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경우 선제적 작전 수행에 진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북한의 이 같은 반응은 무엇보다 ‘최고존엄’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군부의 ‘눈치보기’라는 해석이다. 그동안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및 강도 높은 군사훈련에도 불구하고 함구하고 있었지만 지휘부에 대한 참수작전이 공개되자 더 이상 침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김 제1비서는 최근에도 이영길 북한군 총참모장을 전격 숙청하는 등 집권 이후 군부 길들이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상태다.
북한은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에도 최고사령부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고 “판문점 북·미 간 군부 전화를 차단하고 정전협정도 백지화하겠다”며 “미제에 대해 다종화된 우리식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맞받아치겠다”고 강변했었다. 이때 성명을 낸 사람이 지난해 말 사고사로 숨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후임인 김영철 전 정찰총국장이다.
다만 이번엔 최고사령부 ‘중대 성명’으로 격을 높여 상황의 중대함을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는 “최고사령부 성명은 그동안 몇 차례 나왔지만 한·미 간 군사 압박이 고조되자 ‘중대 성명’이라는 최고 수위의 표현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번 성명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북한은 그동안 장거리 미사일이 아닌 인공위성 발사용 로켓임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 본토 타격’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로켓이 아닌 장거리 미사일이었음을 실토했다. 또 청와대 등 주요 기관에 대한 테러 의도도 드러내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도 스스로 좁히고 말았다.
북한이 성명에서 우리 군의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경우’에 타격을 감행하겠다고 전제한 만큼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군 당국은 “중대 성명 이후 북한의 별다른 동향은 포착되지 않았다. 동태를 예의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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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24 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