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의원들 ‘무제한 토론’ 줄 서… 與 “입법 방해” 반발

입력 2016-02-23 21:42 수정 2016-02-24 00:39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아래)이 23일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장시간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4년 4월 20일 김준연 의원 구속동의안 통과 저지를 위해 5시간19분 동안 발언해 안건 처리를 무산시킨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위 오른쪽)이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정부·여당의 숙원 법안으로 꼽힌 테러방지법이 23일 또다시 국회 문턱에서 막판 진통을 앓았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닥치자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테러방지법 처리를 밀어붙이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야당은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마련된 이후 이 규정이 실제로 활용되기는 처음이다.

◇‘무제한 토론’으로 입법 저지 나선 野=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직권상정되자 야당 의원들은 곧바로 필리버스터에 들어갔다. 오후 7시5분쯤 첫 ‘무제한 토론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혼자서 밤늦게까지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등 세 차례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는 점을 근거로 “지금이 국가비상사태라고 볼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김 의원 말고도 야당 의원들은 잇따라 무제한 토론을 신청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가 대책을 논의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은 국회에서 ‘입법 방해’에 대한 규탄성명을 발표한 뒤 “국민안전 외면하는 야당은 각성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야당의 필리버스터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실제 필리버스터로 안건 처리를 저지한 사례는 5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4년 4월 20일 당시 동료 의원인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통과를 저지하려고 5시간19분 동안 발언해 이를 무산시킨 바 있다.

◇정 의장 “국가비상사태”…野, “몸 던져 막겠다”=정 의장은 본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법률 자문과 검토를 한 결과 이슬람국가(IS) 등 국제적 테러 발생과 최근 북한의 도발적 행태를 볼 때 국민 안위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현재 테러 위협이 직권상정 요건인 ‘국가비상사태’에 해당된다는 의미였다. 정 의장은 전날 이병호 국가정보원장과의 비공개 면담 등을 통해 직권상정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더민주는 본회의에 앞서 의원총회를 열고 당론으로 입법 저지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테러방지법 통과는) 장기 집권 시나리오의 한 서막”이라며 “모든 국민의 통신감청을 통해 빅브러더 역할을 하는 ‘국정원 국가’가 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직권상정 요건이)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사태”라며 “직권상정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고 했다. “몸을 던져 막겠다”고도 했다.

더민주는 의원총회 후 국회의장에게 필리버스터 요구서를 제출했다. 국민의당도 “내용이 졸속, 부실한 상태인데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테러 위협’에 탄력받았던 테러방지법 쟁점은=테러방지법의 골자는 국정원이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출입국·금융거래 정지 요청 및 통신이용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야당은 정보수집권을 국정원에 줄 경우 ‘기능 비대화’로 민간인 사찰이나 야당 감시에 악용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국정원의 정보 수집을 위해 특정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FIU법)과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토록 한 테러방지법 부칙도 ‘독소 조항’이라고 문제 삼았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반대를 감안해 ‘국정원장은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대테러 조사 및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보완했다. 여기에 ‘이 경우 사전 또는 사후에 대책위원회 위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한 수정안이 본회의에 직권상정됐지만 야당의 반대를 막지는 못했다.

새누리당은 대테러센터를 국정원에 설립하는 원안 대신 국무총리 소속으로 두기로 한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 대테러 활동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국가테러대책위원회에 대테러 인권보호관 1명을 두도록 했지만 여야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둘러싼 대치 국면이 벌어지면서 전날 여야 지도부 회동을 통해 처리키로 합의됐던 북한인권법 역시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김경택 고승혁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