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가 깨뜨린 ‘당론’… 속 끓는 친박 확전은 자제

입력 2016-02-23 21:36 수정 2016-02-24 00:50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오른쪽)이 2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리기 직전 황진하 사무총장을 비롯한 당 의원들과 20대 총선 후보 공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동희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3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벌인 선거구 획정 담판 결과를 놓고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론으로 정한 ‘선(先) 민생, 후(後) 선거’ 원칙에 반한 결정을 내리면서 원내지도부와 사전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듯한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야당 반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선거구 획정 지연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절박함을 호소했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일단 확전을 자제했지만 내부에선 불협화음도 감지됐다.

김 대표는 오전 9시쯤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 함께 정의화 국회의장을 면담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구 획정 처리 협상결과를 발표했다. 김 대표는 “(선 민생, 후 선거) 원칙이 깨지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선거는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더는 미룰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결단임을 강조한 발언이자 노동개혁 4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쟁점법안을 먼저 처리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선회한 것에 대한 해명이다. 그는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계속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선거구 획정안 처리 이후 야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개성공단 폐쇄 관련 설명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 대표에게 “국회가 민생법안은 통과시키지 않고 선거구만 처리하면 국민이 이해하겠느냐”고 했다. ‘선 민생’ 기조를 강조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전략 수정이 이뤄진 셈이다.

김 대표 발표 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친박계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김 대표를 향해 “테러방지법에 매몰돼서 경제활성화 법안을 그냥 어물쩍 넘어가지 않겠다. 새누리당 입장은 선 민생, 후 선거구 획정”이라며 “당론에 배치되는 행동은 당 대표든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밝힌다”고 지적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기조를 바꾼 건 없다”며 “양당 대표가 잠정 합의했다고 봐야 하니까 29일까지 다른 법안도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원내지도부와의 사전 조율 여부에 대해 “이야기가 잘됐다”고 했지만, 원 원내대표는 답하지 않았다. 때문에 김 대표 결정이 향후 당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친박계 의원들은 그러나 반발을 자제했다.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김 대표 결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없었다고 한다. 김태흠 의원은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런 시국에서 지도부가 고생했는데 협상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김용남 원내대변인도 “상황이 너무 위중하기 때문에 테러방지법과 연계해 처리한 것”이라며 “다른 쟁점법안(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노동개혁 4법)이 처리되지 않아도 선거법은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청와대가 원하는 테러방지법 처리를 성사시키면서 선 민생 원칙 수정에 대한 설득 여지를 얻어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당내 일각에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중심으로 상향식 공천 원칙을 흔들려는 시도를 김 대표가 차단하기 위해 ‘역공’을 펼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선거구 획정이 계속 지연될 경우 안심번호 활용 등 상향식 공천을 위한 당내 경선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선 관련 유령당원 문제까지 제기돼 당 차원의 재조사 추진도 결정된 상황이다.

김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야당은 선거법 외 다른 법안은 애초부터 처리 의사가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테러방지법까지 받아낸 만큼 여권에서 대놓고 협상을 깎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