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 운영 약정 체결을 놓고 혼선을 빚고 있다. 국방부는 23일 “오늘 중 공동실무단 약정을 체결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조율할 내용이 있어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연 이유에 대해선 일절 함구했다.
앞서 국방부는 전날 오후 공동실무단 운용에 관한 약정을 체결한다고 언론에 공지했었다. 한·미 양측이 약정 내용에 대부분 합의했고 형식적인 서명 절차만 남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예정된 약정 체결 발표 시간을 불과 50여분 앞두고 황급히 체결 지연을 공표한 것이다.
이 약정은 공동실무단 양측 책임자와 인원 구성, 회의 의제, 회의 보고체계, 회의록 작성 원칙 등을 담는 것에 불과하지만 체결 자체가 한·미 간 본격적인 사드 배치 협의 돌입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국방부의 발표는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해 ‘속도 조절’을 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의 이런 스탠스는 중국 변수가 우선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외교장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안 담판을 벌이는 상황에서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추정이다. 사드 배치에 대해 강력 반대하는 중국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도출하기 힘들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이날 워싱턴을 방문해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대북 제재안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들의 반발이 거센 점도 감안한 것으로 추측된다. 배치 지역 문제는 공동실무단이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가면 가장 뜨거운 논란을 일으킬 사안이다. 지역주민 반발이 표심으로 연결될 개연성도 크다. 일각에서는 사드 배치에 대한 본격 협의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미 간 이견이 표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토머스 밴달 미 8군사령관은 류제승 국방정책실장에게 “주한미군사령부와 미 정부 간 대화가 종결되지 않았다”며 약정 체결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약정은 내일 체결이 가능하나 더 늦어질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잡한 외교적,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국방부가 성급하게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는 과욕을 부려 혼선을 빚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주변국을 고려하지 않는다”거나 “자주권 차원에서 판단한다”고 호언해 왔다. 그러나 결국 중국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
외교안보 부처 간 조율이 제대로 안 됐다는 혹평도 존재한다. 국방부가 약정 체결을 발표하려 하자 다른 부처에서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사드 레이더 유해성 논란에 대해서도 국방부가 성급하게 안전하다고 주장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 육군 교범만 믿고 레이더에서 100m 후방에선 안전하다고 했다가 이 교범 자체에 유해 범위를 더 넓게 잡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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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23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