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형님, 화끈해요” 낯 뜨거운 호객… 또 다시 불법 춤추는 노래방

입력 2016-02-24 04:03
행인들이 22일 오후 10시쯤 번쩍이는 노래방 간판들로 가득한 서울 영등포역 인근 유흥가를 지나고 있다.
“형님, 노래방 안 가십니까?”

자신을 ‘아우디’라고 소개한 호객꾼이 다가왔다. 22일 오후 8시쯤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역 3번 출구 근처 골목들엔 형형색색 노래방 간판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아우디에게 ‘가격’을 물었다. “노래방비 3만원, 도우미 부르시면 3만원, 맥주는 한 병에 5000원입니다. 10병 시키면 5병은 무료로 서비스 드려요.”

그냥 지나치려 하자 잠시 주위 눈치를 살핀 뒤 “아가씨에게 팁 주시면 화끈한 쇼도 가능하다. 20만원만 내시면 2차도 갈 수 있다”고 귓속말을 건넸다. 그는 “요즘 송파 물 좋아요” 하며 꾸깃꾸깃 접힌 명함을 내밀었다.

5분쯤 뒤에 한 건물 2층 노래방에서 도우미 A씨(여)가 걸어 내려왔다. ‘공급업체’ 소속이라는 그는 “한 곳 영업이 끝나서 다른 노래방으로 옮기는 중”이라며 “가락시장 근처 아파트나 오피스텔, 사무실 같은 데서 쉬다가 콜이 오면 나온다”고 했다. 서둘러 길가에 주차된 차에 올라탄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후 10시쯤, 서울 영등포역 근처의 호객꾼들은 더 대담했다. 지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채는 등 적극적이다. ‘오광’이란 별칭의 호객꾼은 “우리 업소는 공급업체 안 쓴다. 예쁜 아가씨 6명이 상시 대기 중”이라고 했다. 그는 “화끈한 쇼나 서비스, 2차는 다 형님이 팁 주는 거에 달렸다”며 3분 동안이나 쫓아왔다. 이때 다른 호객꾼이 나타나 불쑥 손을 잡아끌었다. “일단 들어가서 얼굴부터 보세요.”

노래방? 단란주점? 유흥주점?

서울의 대표적 노래방 밀집지역인 영등포와 가락시장 일대는 성매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경찰청은 두 지역 노래방을 집중 단속했다. 음란·퇴폐영업을 한 업주 19명을 적발했다. 노래방이 불법 성매매 등의 온상이라고 판단해 4월 말까지 서울 전역의 노래방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느슨해진 단속망을 비집고 다시 ‘불법’이 활개치고 있다.

업소들은 대부분 ‘노래방’ 간판을 달고 있지만 법적 영업형태는 세 가지로 나뉜다. 음악산업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노래방은 순수하게 노래만 할 수 있다. 노래와 함께 술을 팔 수 있는 곳은 식품위생법으로 규정되는 단란주점이다. 유흥주점은 노래와 술에 접대부가 더해진다. 다만 노래방, 단란주점, 유흥주점 모두 외부에서 접대부를 불러오는 것은 불법이다. 성매매와 유사성행위는 물론 각종 음란·퇴폐 ‘쇼’도 금지돼 있다.

영등포동 3가에는 노래방 10곳, 유흥주점 80곳, 단란주점 25곳이 등록돼 있다. 송파구 가락본동에는 유흥주점 31곳, 단란주점 34곳, 노래연습장 97곳이 있다. 업태를 유흥주점으로 신고한 곳만 보건증을 지참하고 상주하는 도우미를 둘 수 있다.

꼼수와 방관, 그리고 ‘탕치기’

하지만 상당수 업소는 꼼수를 쓴다. 세금을 30%가량 더 내야 하는 유흥주점 대신 노래방으로 신고한 뒤 도우미를 두는 식이다. 유흥주점이라고 하면 손님들이 비싸다고 발길을 돌릴까 싶어 일부러 ‘노래방’ 간판을 달기도 한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노래 바’라는 글자 밑에 ‘하트(봭)’ 표시나 ‘마이크 그림’을 넣는다. 밤에만 노래방이란 글씨가 보이도록 하는 간판을 쓰는 곳도 있다.

‘꼼수 간판’이 경찰이나 구청에 적발되면 시정명령을 받는다. 다시 걸리면 7일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그러나 단속의 눈길은 멀다. 늘 인력이 부족한 경찰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송파서 관계자는 “성매매와 음란채팅이 주된 단속 대상이라 노래방까지 신경을 못 쓰고 있다”고 했다. 영등포서 측도 “실질적인 풍속 단속인원이 2명뿐이라 여력이 없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3월 이후 노래방을 단속한 적은 없다”며 “구청에서 단속을 주도하면 함께 나가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구청도 소극적이다. 송파구 관계자는 “구체적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구청은 사법권이 없어 단속하기가 어렵다”며 “무허가 공급업체의 경우 직업안정법상 처벌받게 되는데 구청은 그런 권한 자체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불법이 판을 치면서 불법에 기생하는 일명 ‘탕치기’(불법 영업 업소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행위) 범죄도 기승을 부린다. 지난해 9월 수원 일대에서 불법 노래방 업주를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350여만원을 빼앗은 30대 남성이 구속됐다. 지난해 11월엔 경기도의 한 경찰이 비슷한 수법으로 돈을 요구하다 파면됐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불법 성매매와 유사성행위, 음란 쇼의 근거지가 되고 있는 노래방에 대해 경찰이 상시 단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동시에 성매매 수요 자체를 없애는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