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 스토리] 봉황남과 공작녀의 ‘이별 소설’에 中 씁쓸한 뒷맛

입력 2016-02-24 04:09
중국 신경보의 ‘상하이녀’ 풍자 만평. 여성이 “너희 봉황남은 다들 이 모양이냐”고 소리치고 있다.

중국에는 사전에 등재돼 있지는 않지만 언론이나 인터넷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봉황남(鳳凰男)과 공작녀(孔雀女). 봉황남은 시골 출신에 고학으로 대학을 마치고 도시에서 직장을 얻어 생활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공작녀는 도시에서 나고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도시 여성입니다. 봉황남과 공작녀는 짝이 맺어지기도 하는데 환경 탓인지 문제도 많습니다.

지난 춘제(春節·중국 설) 기간 하얼빈 ‘금값 생선’과 함께 가장 많이 회자됐던 것이 ‘상하이 공작녀와 장시성 봉황남의 이별 이야기’였습니다. (참고로 하얼빈 ‘금값 생선’은 춘제 연휴기간 철갑상어 요리에 1만302위안(약 196만원)을 청구해 논란을 빚은 것으로 결국 최근 식당 사장은 50만 위안(약 9500만원)의 벌금을 받았습니다.)

춘제를 이틀 앞둔 지난 6일 1988년생 ‘상하이녀’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1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사연을 올립니다. (미리 얘기하지만 사연은 허구로 나중에 밝혀집니다.) 상하이 공작녀는 국유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아빠와 퇴직이 2년 남은 교사 엄마 사이에 풍족하게 자란 ‘샤오캉(小康·중산층) 가정’ 출신입니다. 현재는 외자기업에서 일합니다. 외지 출신인 남자친구는 업무 능력이 출중하고 외모도 좋아하는 스타일이지만 부모님이 반대합니다. 물려받는 집안 재산도 없고 2∼3년 내에 집을 마련하기도 힘들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도 남자친구가 조르고 졸라 남자친구 고향집에 설을 쇠러 장시성의 한 시골마을로 갑니다. 그리고 처음 대접받는 밥상이라며 사진을 올리고는 “기차를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쓰레기차’ 같은 것을 타고 도착한 상태”에서 토할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집 형편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100배 이상은 안 좋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남자친구에게 집으로 당장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남자친구는 지금 가면 끝이라고 했지만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사연이 소개되자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글은 조회수가 1억1000만건이 넘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정성스럽게 마련한 밥상에 무슨 짓이냐”며 꾸짖는 사람도 많고 “처음 경험하는 시골 모습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이해한다”는 글도 많습니다.

상하이녀가 올린 글 속에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 많다며 ‘가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네티즌 수사대는 외자기업에 종사한다는 도시 여성이 전화로 기차표를 예약했다거나, 올린 사진의 화소나 사이즈가 글을 올릴 때 사용한 아이폰의 것과 다르다는 등의 의혹을 줄줄이 제기합니다. 결국 지난 21일 ‘중국강서망’에는 글을 올린 사람은 애기 엄마인 쉬모씨로 상하이 사람도 아니고, 올린 글도 가짜라는 기사가 뜹니다. 사실은 춘제를 시댁에서 보내야 하는 것을 두고 남편과 싸운 뒤 홧김에 올린 글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중국인은 허탈해합니다. 언론들도 전문가들을 인용해 “무책임한 글로 사이버 공간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베이징대 리위샤오 교수)”며 분개합니다. 하지만 가짜 글 속이라도 그 뒤에 숨겨진 중국의 이면을 바로 보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급격한 도시화 속에 생긴 도시와 농촌 그리고 빈부 간 격차 말입니다. 2011년 정해진 중국의 최저 빈곤선은 연 2300위안으로 월 200위안이 안 되고, 하루 6위안(약 1130원)이 조금 넘습니다. 이런 빈곤인구가 중국에 7200만명이나 됩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