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할머니 “나 대학 갈건데 전공은 뭐하지?”… 서울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이수자 졸업

입력 2016-02-23 19:46
늦은 나이에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문해(문자해독) 교육 졸업생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졸업식을 마친 뒤 학사모를 하늘 높이 던지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셋째 딸 학교에 갔다/ 선생님이 (물었다)/ ○○어머니 새어머니세요?/ 왜요/ 딸을 입학시킨 후/ 한 번도 오지 않아서요/ 글을 몰라서 그랬다고/ 지금 같으면/ 말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딸의 담임선생님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는 이매자(74·여)씨 마음에 한평생 응어리로 남았다. 일흔이 넘은 2013년에야 용기를 내 학력인정기관 ‘푸른어머니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맞벌이하는 딸을 위해 손주도 보고 살림까지 도맡던 그가 저녁마다 책가방 메고 집을 나섰다. 딸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야간 ‘시 쓰기 반’ 수업에서 이씨는 배움에 대한 열망과 설움을 ‘말이라도 할 수 있다’는 제목의 이 짤막한 시로 피워냈다.

김광자(79·여)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6·25전쟁이 벌어지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배우지 못한 한은 2014년 9월 고향 친구와 함께 양원주부교실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풀렸다. 김씨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계속 공부할 텐데 수학 과학 사회 등 모든 과목이 재미있어서 대학에서 뭘 전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즐거운 고민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3일 오후 3시 서초구 서울교육원수원에서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졸업식을 열고 이씨, 김씨처럼 36개 학력인정기관에서 문해(文解) 교육을 이수한 ‘만학도’ 556명에게 졸업장을 건넸다. 485명은 초등 과정을, 71명은 중학 과정을 마쳤다. 김씨는 학업성취도가 높은 우수 학습자로 뽑혀 교육감 표창장도 함께 받았다.

졸업생들은 60대 36.7%, 70대 44.5% 등 50∼80대 장·노년층이 대부분이다. 서울교육청은 2011년 전국 시·도교육청 가운데 처음으로 ‘초등학력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두 1797명이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서울 시내 학력인정기관에서만 2260명이 문해교육을 받고 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장·노년층뿐 아니라 다문화가정 여성과 외국 국적자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초등·중학 과정의 문해교육 프로그램 운영기관을 지난해 64개에서 올해 66개로 확대 지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