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에서 가장 멋진 풍광을 펼쳐놓는 곳은 부소담악이다. 군북면 소재지 지나 환평리를 넘어가면 추소리다. 이 마을 들머리에 우람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언덕이 서낭재다. 이곳에서 마을 반대편으로 난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800m 쯤 가면 부소담악 능선을 올라타게 된다.
마을 앞을 구불구불 흐르는 서화천 가운데로 산줄기처럼 뻗은 지형이다. 댐이 생기고 대청호가 형성되면서 막힌 서화천 물길과 준봉이 빚어 놓은 모습이 독특하다.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불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서화천은 충남 금산에서 발원해 옥천 서북쪽 지역의 봉우리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대청호에 이른다. 수면 위로 솟은 능선 아래는 원래 경사 완만한 밭이었는데 물이 차면서 능선 끝부분만 남았다. 너비 20m, 높이 40∼90m의 능선이 물길 복판으로 약 700m나 뻗어 있다. 사계절 언제든 풍광이 장쾌하다.
서낭재에서 부소담악까지는 걷는다. 절반은 폭신한 흙길이고 절반은 낙엽 소복하게 쌓인 숲길이다. 장승공원 지나면서부터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추소정에 올라 물길 너머 한갓진 시골마을을 음미하고 아늑한 솔숲에 에워싸인 부소정에 앉아 시원한 풍광도 즐긴다. 좁다란 능선 양쪽은 물. 능선은 바위가 만든 천연의 다리가 된다.
부소담악은 안에 들어서 보면 정겹고, 한발 떨어져 바라보면 장쾌하다. 고리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부소담악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국내 100대 명산’에 드는 전망 좋은 산으로 나제동맹이 깨진 뒤 백제·신라군이 격전을 치렀던 곳이다. 정상까지 편도 2.2㎞로 2시간이면 넉넉하다. 추소리 뒷산 성인봉 중턱에 올라도 좋다. 서낭재에서 황룡사 방향으로 2차선 도로를 따라 50m 내려오면 왼쪽으로 좁고 희미한 오솔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20∼30분쯤 오르면 닿는다. 가파른 길에 올라서면 그 장쾌함에 눈이 호강한다. 준봉 사이를 ‘S’자로 휘어지며 흐르는 물길이나 이 가운데로 뻗어있는 능선이 거대한 용의 움직임처럼 꿈틀댄다. 눈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소옥천이 감아 도는 추소리마을과 그 너머로 첩첩이 옥천의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다.
금강이 굽이쳐 만든 둔주봉의 경치도 장관이다. 해발 384m에 불과한 산이지만 올라서 보는 풍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안남면 소재지에 들어서면 둔주봉으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안남초등학교 샛길로 들어서 둔주봉에 오르면 ‘한반도 지형’이 반긴다. 좌우가 바뀐 한반도는 980분의 1로 축소한 길이 1.45㎞ 크기다. 오르는 길은 산세가 험하지 않고 소나무 숲이 이어져 삼림욕에도 좋다. 다만 3월까지 전망대 공사중이어서 확인해보고 가는 곳이 좋다.
옥천 구읍에 복원된 정지용 시인의 생가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옆에 문학관도 있다. 금강을 경유하는 자전거 코스인 ‘향수 100리길’도 여기서 시작된다. 생가 툇마루에 앉아 볕을 쬐고 우물이 있는 마당도 거닐어본다. 초가는 단출한데 거닐며 느끼는 평온함은 장대하다. 구읍 곳곳은 상점 간판조차 정지용의 시구로 단장돼 있다. 골목길만 유유자적 걸어도 시향(詩香)이 물씬 풍긴다.
정지용은 1902년 옥천읍 하계리에서 출생했다. 일본 유학중이던 22세에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향수’를 썼다. 그리고 6·25전쟁 당시 홀연히 집을 나간 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고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향수’ 속 너른 들과 굽어 흐르는 물길이 있는 고향의 모습을 보려면 보청천을 따라가는 길이 좋다. 보청천이란 이름은 충북 보은의 속리산 자락에서 발원해 옥천군 청산면으로 흘러내린다 해서 보은에서 ‘보’자를, 청산에서 ‘청’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부드럽고 푸근하며 그 언저리의 마을들은 고향의 정취로 가득하다.
옥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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