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여의도 피바람

입력 2016-02-23 17:36

23일부터 여의도에서 피바람이 시작됐다. 뒤늦게나마 선거구 획정 기준이 확정됐고,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컷오프 대상자들에게 비공개 통보를 했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으로 대표되는 비박과 친박의 전쟁이 진행 중이고, 국민의당도 호남발 공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늦은 획정 기준 확정은 사실상 현역 기득권들의 침묵의 담합 구조 때문이다. 늦출수록 유리하니 가능한 피바람을 피하기 위해 늦추고, 축소하고, 새 제도 도입을 무산시키는 것이다. 여야가 첨예 대립하는 것 같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서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작업이었다. 공동이익을 위해 의원들끼리 서로 덮어주고 봐주는 의리는 끝내준다. 요즘 한국 영화를 풍미하는 주인공들의 속성과 비슷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던가. 획정 기준 내용에 들어있는 숫자, 기준, 예외조항 등은 현역이나 예비후보들의 생사에 영향을 미친다. 이 기준을 갖다대면 이런 선거구가, 저 기준을 적용하면 다른 선거구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선거구 조정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컷 오프된 사람들 대부분은 한을 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으려 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도 공천받기 위해 각자도생할 터이니 사방이 적이다. 여의도에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피바람이 부는 까닭이다.

그런 피바람을 각 정당은 앞다퉈 개혁, 물갈이라 칭한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국회 공천 때도 그랬다. 선진국 중 우리처럼 초선 비율이 많은 나라도 없다. 어느 의원이 “초등학생만 양산할 거냐”고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암만 물갈이해도 정치(인)의 담합 구조, 모든 길은 국회로 통하는 이상한 시스템, 여야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누가 간들 4년 뒤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게다. 이번 피바람의 결과는 좀 달랐으면…. 바랄 걸 바라라고?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