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하기 위한 여야 협상은 22일에도 결렬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선거구 공백 사태는 53일째를 맞았다. 후보자 등록 신청(3월 24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고 각 당은 이미 공천 심사를 시작했지만 정작 선거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여당의 ‘쟁점법안 연계 전략’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사안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 가다간 19대 국회 전체가 공멸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전만 해도 여야 합의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전날 새누리당 원유철,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만나 23일 본회의 처리 안건을 협의하면서 입장차를 좁히는 듯했다. 양당은 선거구 획정 기준과 북한인권법에 대해선 사실상 합의에 이른 상태였기 때문에 남은 건 테러방지법이었다. 테러방지법에서 접점을 찾으면 선거구 획정 문제도 물꼬가 트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의장실을 찾았다. 김 대표는 정의화 의장과 면담한 뒤 곧바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만나러 갔다. 두 대표는 배석자 없이 10분 정도 대화를 나눈 다음 함께 의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 대표 권한인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갔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에게 “선거는 원만하게 치러야 하기 때문에 선거구 획정안과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에 대해선 양당 원내지도부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여권의 또 다른 주력 법안인 노동개혁 4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일단 뒤로 미뤄놓고 시급한 현안부터 해결하겠다는 얘기였다.
오후 2시40분부터 시작된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간 회동은 모두발언 없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새누리당은 23일 본회의에서 북한인권법과 테러방지법을 처리하고 동시에 선거구 획정 기준을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넘긴 다음 29일 본회의에서 나머지 쟁점법안과 새 선거구 구역표가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함께 통과시킨다는 구상을 갖고 협상에 임했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늦어도 29일 본회의는 20대 총선을 위한 공정 경쟁의 출발선이자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고 튼튼한 안보의 초석을 다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하지만 더민주는 기류가 좀 달랐다. 새누리당이 전향적인 테러방지법을 갖고 와도 의원총회 통과를 낙관할 수 없는 데다 선거구 획정에 마음이 급한 김무성 대표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흘러나왔다.
결국 발목을 잡은 건 테러방지법이었다. 여야는 국가정보원에 테러 관련 정보수집 권한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끝내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테러 관련 무고는 가중처벌하고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인권 보호관’을 두자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야당은 거부했다.
여야는 오후 9시 다시 만나 협상을 이어갔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더민주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국정원의 권력남용,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가져오면 협상을 해볼 수 있겠다고 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며 “(여당의 중재안은) 매우 부족하다”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국정원에 테러 정보수집 권한 부여 이견 못 좁혀
입력 2016-02-22 22:06 수정 2016-02-23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