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북한과 극비리에 접촉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의 지난 1월 4차 핵실험으로 교섭이 결렬되기는 했지만 미국 정부가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논의를 병행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최근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평화협정 논의의 병행 추진을 제안한 이른바 ‘왕이 이니셔티브’와의 연계 가능성도 주목된다.
북·미 간 접촉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와 미 국무부의 확인을 통해 알려졌다. WSJ는 21일(현지시간) 미국 고위급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핵실험 며칠 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이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한 협정을 논의하는 데 비밀리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도 “북한이 지난해 말 유엔대표부를 통해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제안해 양자 간 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WSJ는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감축하는 절차를 밟아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오랜 방침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은 “분명히 평화협정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먼저 한 건 북한이었다”며 “우리는 북한의 제안을 신중히 검토한 뒤 비핵화가 (평화협정)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해명했다. 커비 대변인은 “북한은 우리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북한의 제안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비핵화를 중시하는 미국의 오랜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커비 대변인의 설명은 입장 불변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북한이 비핵화 의지만 보이면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논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한국과 미국 당국은 현재 대화가 아니라 북한 제재에 집중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통과 이후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이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을 6자 회담의 최종 목표로 삼도록 제안한 상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7일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반도(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동시에) 병행해 추진하는 협상방식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중국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대화”라면서 “유엔 제재 결의안 통과 이후를 염두에 두고 중국이 6자 회담을 비롯한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를 가진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협정 체제 전환을 위한 논의가 급진전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미국과 중국 모두 비핵화를 강조하지만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북한이 비핵화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또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체결의 궁극적 목적은 ‘주한미군의 철수’라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평화협정 체결로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것은 중국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것”이라면서 “미국이 북한과 중국이 원하는 대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khmaeng@kmib.co.kr
[관련기사 보기]
고개 든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美도 中도 기웃… ‘악화일로’ 한반도 문제 새로운 해법 찾나
입력 2016-02-22 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