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58) 외모의 덫

입력 2016-02-22 17:42
‘레버넌트’ 포스터

동료에게 버림받아 대자연에 던져진 인간의 삶을 향한 의지와 복수를 그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봤다. 그러나 영화 자체보다 더 내 마음을 잡고 놔주지 않은 것은 주연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을 수염과 피로 가린 그는 마치 “나라는 배우를, 나의 연기를 봐주시오. 내 얼굴은 보지 말고”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디캐프리오는 잘 생긴 배우다. ‘로미오+줄리엣’(1996) ‘타이타닉’(1997)에서 그의 얼굴은 눈부셨다. 그대로 나갔더라면 미남배우가 가는 전형적인 길, 곧 멜로물의 주인공으로 안착했겠지만 그는 그 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이후 그의 출연작들은 외모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채워졌다. ‘레버넌트’처럼.

할리우드에는 ‘외모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와 특이한 캐릭터 구축이나 연기력 등을 통해 배우로서의 자아를 모색하려 한 이들이 적지 않다. 폴 뉴먼도 그렇다. 뉴먼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푸른 눈’을 지닌 잘생긴 남자배우의 대명사였으나 ‘얼굴 배우’이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에 나섰다. 그래서 찾아낸 게 주위와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나아가 ‘감싸주고 싶은’ 아웃사이더, 혹은 아웃로(무법자) 역할이었다. 그가 그런 역할로 가장 크게 주목받은 게 ‘탈옥’(1967)의 반항적 죄수 루크였고. 그 정점을 찍은 게 ‘내일을 향해 쏴라’(1969)의 사랑스러운 무법자 부치 캐시디였다.

반면 잘생긴 얼굴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배우들도 적지 않다. 로버트 테일러가 클래식한 케이스. 1911년생인 테일러는 젊었을 때 ‘사상 최고의 미남’이란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외모를 떠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잠깐 누아르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었지만 빛을 발하지 못한 채 그저 그런 사극과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전전하다 1969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배우에게 잘생긴 얼굴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지만 덫이기도 함을 새삼 느낀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