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세계적 작가 움베르토 에코(사진)가 19일 오후 9시30분쯤(현지시간) 이탈리아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외신들이 20일 보도했다. 향년 84세. 에코는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추’ 등 소설로 알려졌지만 역사, 철학, 미학, 기호학, 문화비평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약한 대표적인 석학이다.
1932년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에코는 토리노대에서 중세철학과 문학을 전공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강단에 서기 시작했다. 철학, 컴퓨터, 영상 커뮤니케이션 등 다방면의 지식을 쌓았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 능통한 ‘언어의 천재’였다. 13세에 스탕달에 빠지고, 15세에는 토마스 만에 매혹됐으며, 16세엔 쇼팽을 사랑했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80년 펴낸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이었다. 중세기 수도원을 무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필사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뤘다. 아마존에 따르면 이 소설은 40여개 언어로 번역돼 5000만부 이상 팔렸다. 86년 한국에도 소개돼 ‘에코 바람’을 몰고 왔다. 89년에는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모았다.
에코는 ‘지식계의 T-Rex(티라노사우루스)’로 불릴 만큼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했다. 88년 발표된 ‘푸코의 진자’는 기호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죽음과 삶의 문제, 악마주의와 구원 등을 다룬 소설로 여러 매체에서 당시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고인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한국인의 개고기 문화를 비판한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에 대해 ‘파시스트’라고 비난했다. 2002년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어떤 동물을 잡아먹느냐의 문제는 인류학적인 문제다. 그런 면에서 바르도는 한마디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둔함의 극치”라고 일침을 가했다.
2012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내가 쓴 모든 책을 번역한 몇 안 되는 예외적 나라”라며 고마워했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에코의 저서 50여권을 출간한 데 이어 마지막 소설 ‘창간준비호’(원제 Numero Zero)를 오는 6월 펴낼 예정이다. 안성열 열린책들 편집주간은 “에코는 인문학도에게는 일종의 ‘현상’ 같은 인물”이라며 “그의 글들에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살아있고, 냉소와 아이러니가 넘쳐난다”고 말했다.
에코는 미디어 재벌 출신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부패와 전횡을 두고 히틀러나 카다피에 비유하는 등 현실 정치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박학다식한 사회 참여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스스로 역사가 돼 잠들었다. 62년 결혼한 독일인 미술 교사 레나테 에코와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두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깊고 넓은 지성의 큰 울림… 움베르토 에코 별세
입력 2016-02-21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