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첫 남북정상회담 성과 등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몇 달 뒤인 2001년 3월 미국을 방문했다. 직전 출범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남북 화해협력 기조 이행과 그에 따른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정상회담에서도 대북강경론자인 부시 대통령에게 정부의 대북 정책을 설파했다. 햇볕정책이 궁극적으로 북한 체제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다.
하지만 회담 성과는 기대와 달랐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김 대통령을 옆에 두고 “나는 북한 지도자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북한이 모든 합의를 준수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통령을 “디스 맨(this man)”이라고 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장면 둘. 햇볕정책을 계승해 ‘포용정책’을 추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2005년 11월 경주 정상회담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두 정상은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대북 금융제재 문제를 놓고 1시간 이상 격론을 벌였다. 두 달 전 북핵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도출로 북한 핵 포기에 대한 희망이 보였는데, 미국의 돌연한 금융제재 조치로 북한이 강력 반발한 것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훗날 “최악의 정상회담이었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이 두 장면은 북한의 핵 개발, 북한 체제 변화 등에 대한 과거 우리 정부와 미국 행정부 간 확연한 시각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 기조 속에서도 과거 우리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의 본질은 꾸준한 대화와 협력, 지원 등으로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정부분 성과도 있었지만 결국 북한 정권의 속성까지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번 주 취임 3주년을 맞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남북 간 신뢰 구축을 통한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목표로 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사실상 실패했다. 1993년 북한발 1차 핵 위기부터 20년 넘게 지속돼온 북핵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 사이 북한은 네 차례나 핵실험을 강행했고, 장거리 미사일도 여러 차례 발사했다. 북한 핵·미사일 능력은 국제사회의 커다란 위협 요인이 돼 버렸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현시점에서 누가 옳았고 누가 전략적 판단 미스를 했는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법이 실패했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새로운 해법을 찾는 데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 게 현명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국회 연설에서 대북정책의 근간을 전환하겠다고 천명했다.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되는 한 대화와 신뢰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박이 북한 정권 변화로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남북관계 역시 장기간 희생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직접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는 한 북한발 안보 위협 역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통일을 이뤄야 할 같은 민족이기에 북한 핵이 바로 우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제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환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때다. 핵 위협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
[뉴스룸에서-남혁상] 불편한 진실 ‘북핵’
입력 2016-02-21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