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대리석이라니요? 관악산을 좀 보세요. 저 산처럼 우리 땅에 지천인 화강암이 얼마나 좋은가요. 이 미술관 외관을 다 저 돌로 쓸 겁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설계자는 재미원로 건축가 김태수(80)씨다.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김태수 전’을 마련했다. 작가는 1961년 유학길에 올라 미국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다. 개막식 참석 차 전시장을 찾은 그를 지난 18일 만났다.
외관 얘기를 꺼냈더니 화강암은 너무 흔한 돌이라 많이 써봐야 돌담에나 쓴다며 말리던 공무원들 표정이 생각나는 듯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과천관은 육중한 석재 외관 탓에 서양의 성곽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재료와 공간 배치 등에서 “건축물은 그게 놓인 땅과 장소의 일부여야 한다”는 건축 철학이 녹아 있다. 설계 공모 당시 전두환 정권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도 웅장한 건축물이 있다는 걸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싶어 했다. 83년 정부가 내려 보낸 ‘문화시설 현상 지침’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침은 건물 10,000평, 조각 전시장 10,000평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부지에 어떤 색의 재료를 써야 주변 청계산, 관악산과 조화를 이룰까 고민하던 김태수의 눈에 산의 일부가 된 화강암이 들어왔던 것이다. 수입이면 무조건 최고로 치던 시대에 한국적 재료를 고집한 것은 유학시절 찾아낸 ‘초가마을론’에서 비롯됐다.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예일대 건축과 교수인 루이스 칸의 건축에 매료돼 이 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양에서 온 그는 초기에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서양 학생들 틈에 끼여 건축 공부를 하면서 ‘내 것이 뭐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10살 무렵 1년 정도를 보냈던 경남 함안의 시골 할아버지네 집성촌 초가 마을이 떠올랐다. “초가집 한 채는 별로지요. 하지만 초가지붕들이 언덕 위에 어깨를 맞대고 이어져 있는 풍경은 다릅니다. 심포니를 듣는 것처럼 자연 속에서 함께 조화롭게 있을 때 아름다운 거지요.”
대규모 건물임에도 멀리서 보면 산세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과천관 설계의 뿌리는 이처럼 한국의 초가마을과 닿아 있었다. 한국 건축계의 대부 김수근(1931∼1986)과 사실상 2파전을 벌인 끝에 공모에 당선됐다. 그렇지만 지금의 외관이 아니라 지붕에 전통기와가 얹혀질 뻔한 아슬아슬한 고비가 있었다. 층층 기와지붕이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을 생각하면 된다.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건 전두환 대통령이었다며 비화를 공개했다. 그 때만 해도 공무원들의 간섭이 많았다. ‘전통을 살리려면 지붕에 기와를 얹어라’ ‘팔각정 모양으로 해라’ 등 외형에서 전통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 대통령 앞에서 설계안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설명을 흥미롭게 듣던 전 대통령이 말했다. “기와는 무신 기와, 이게 좋으니 본인 설계대로 하게 하시오.”
그는 ‘박스 건축가’로 불린다. 가장 단순한 사각형 안에 건축물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70년대에 지은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의 ‘김태수 주택’이 집약적으로 상징한다. 심플함을 추구한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이 없던 시절이었지요. 내 집을 설계하면서 좋은 건축이란 최소한의 크기와 기본적인 형태만으로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지요.”
하트포드대학 그레이센터, 미 해군 잠수함 훈련시설, 주튀니지 미대사관 등을 지었다. 국내에도 교보연수원, LG화학기술연구원, 금호미술관이 그의 설계다. 김태수의 건축세계를 모형과 사진, 아카이브를 통해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6일까지 이어진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설계자 김태수 건축가 “초가마을이 설계 뿌리… 화강암 외관 끝까지 고집했죠”
입력 2016-02-22 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