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산별노조 탈퇴→기업노조 전환 가능하다”

입력 2016-02-19 21:16

산업별 노동조합(산별노조)에 소속된 지부·지회가 산별노조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첫 판단이 나왔다. 산별노조 조직의 유지보다 각 지부·지회에 소속된 노동자의 의사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산별노조를 중심축으로 하는 노동운동 방식과 노동계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장과 조합원 등 4명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한 총회의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발레오전장 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경북 경주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옛 발레오만도) 노조는 2010년 6월 원래 소속돼 있던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로 전환을 결의했다. 당시에 금속노조가 주도한 농성과 사측의 직장폐쇄가 장기화되던 중이었다. 조합원들은 금속노조의 투쟁방식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조합원 601명 중 536명이 조직 전환에 찬성했다. 금속노조 측은 집단탈퇴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금속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은 독자적인 단체교섭·단체협약 체결능력을 가진 경우에만 조직형태 변경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발레오전장 지회는 이런 독립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총회 결의는 무효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직형태 변경 범위를 더 넓게 봤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8명은 ‘단체교섭·협약 체결능력이 없어도 독자적 규약과 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한 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지부·지회라면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노조가 어떤 조직형태를 갖출 것인지, 이를 유지·변경할 것인지 등의 선택은 단결권의 주체인 근로자의 자주적·민주적 의사결정에 맡겨져 있다”고 밝혔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 5명은 단체교섭·협약 체결능력이 필수라고 봤다.

이번 판결로 지부·지회의 ‘산별노조 탈퇴 러시’가 일어나면 산별노조의 교섭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핵심인 금속노조와 공무원노조 등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상신브레이크 지회 등의 유사한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하급심에도 수십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동안 산별노조는 동종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대규모 조합으로 묶어 사용자 측과 ‘힘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조합원 80% 이상이 산별노조 소속일 정도로 노동운동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노동운동을 벌여온 노동계의 지난 역사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전면 부정했다”고 말했다.

중앙대 이병훈 사회학과 교수는 “그간 산별노조가 기업 상대 교섭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하면서 침체됐다”며 “이번 판결로 산별노조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산별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신훈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