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잠깐 ‘들르고’… 번쩍 ‘들리고’

입력 2016-02-19 18:15

“아침에 차례 지내고 나서 친정 들렸다가 가요.” “길이 막혀서 처가 들릴 시간 없겠는데.”

설날 아내가 친정에 가자고 남편한테 말해보지만 교통체증으로 어렵게 됐습니다. 위 예문에서 ‘들렸다가’는 ‘들렀다가’, ‘들릴’은 ‘들를’이라고 해야 합니다. ‘들르다’는 ‘지나는 길에 들어가 잠시 머무르다’라는 뜻입니다. ‘들러, 들르니’로 활용되지요. 열에 여덟아홉은 ‘들르다’라고 해야 하는 곳에 ‘들리다’라고 말합니다. 쉬 고쳐지지 않는 입말 가운데 하나이지요.

들리다는 ‘소리가 들리다’, ‘몸이 번쩍 들리다’처럼 ‘위로 올려져 바닥에서 떨어지다’는 뜻 외에 ‘안 좋은 소문이 들리다’ ‘나보다 네가 낫다는 말로 들리네’ ‘그의 손에 들린 꽃’ ‘엄마가 방울소리를 들리자 아기가 방긋 웃었다’ ‘지독한 감기가 들려 결근했다’ ‘그녀가 신이 들려 작두를 탔다’ ‘밑천이 다 들렸다(떨어졌다)’같이 쓰입니다.

들르다, 들리다의 경우와 비슷한 예로 ‘몸을 가누어 움직이다’라는 뜻의 ‘추스르다’가 있지요. ‘아이들 봐서라도 이제 몸 추스리고(추슬리고) 일어나야지’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잘못입니다. ‘추스리다’ ‘추슬리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추스르고 추스르듯 추스른 추슬러’ 등처럼 말해야 합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