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영화 ‘미녀와 야수’ 오페라로 만난다

입력 2016-02-22 04:00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는 장 콕토의 동명 영화가 상영되는 가운데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음악이 연주되는 형식이다. LG아트센터 제공
필립 글래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는 18세 생일날 갑작스런 사고로 아빠를 잃은 소녀의 핏빛 성장기를 다룬 수작이다. 많은 이들이 여주인공 인디아가 비밀스러운 삼촌 찰리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는다. 잠재됐던 인디아의 본능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는 이 장면에 사용된 피아노곡은 현대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사진)가 이 영화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박 감독은 ‘영화의 진정한 보석’이라며 피아노 듀엣 장면에 무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글래스가 ‘스토커’ 작업에 선뜻 나선 것은 그가 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심취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글래스는 1960∼70년대 현대예술계의 ‘미니멀리즘’을 주도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공연된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이런 단조롭고 반복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1974년 ‘Music in 12 Parts’를 완성하면서 자신의 미니멀 스타일은 끝났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이후 다양한 양식 변화를 거듭했으며 본인을 ‘고전주의자’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부터 영상에 음악을 입히는 프로젝트인 ‘필립 온 필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기계문명과 환경파괴 문제를 주로 다루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갓프리 레지오와 잇따라 공동작업을 해온 그는 흑백 고전영화에 자신의 음악을 새로 입히는 일에 천착했다.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시네마 개척자인 장 콕토를 존경해 ‘오르페’ ‘미녀와 야수’ ‘앙팡 테리블’에 본인 음악을 입혀 체임버 오페라(오르페), 필름 오페라(미녀와 야수), 무용극(앙팡 테리블) 형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아울러 글래스는 1998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을 시작으로 할리우드 히트 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트루먼쇼’ ‘디 아워스’ ‘일루셔니스트’ ‘스토커’ 등의 영화를 더욱 빛나게 했다.

3월 22∼23일 서울 LG아트센터와 3월 25∼26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공연하는 ‘미녀와 야수’는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이다. 글래스 역시 “동화의 판타지를 한 편의 시처럼 구현한 ‘미녀와 야수’야말로 예술 창작 본질을 담은 작품”이라며 애착을 드러냈다.

작품은 대사와 음악 등 소리가 완전히 제거된 콕토의 흑백영화가 무대 위에 상영되는 가운데, 글래스가 새롭게 작곡한 음악을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연주하고 성악가 4명이 필름 속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노래하는 특별한 형태의 공연이다. 95분간 마치 흑백 오페라를 라이브로 보는 듯하다. 1994년 초연 때부터 ‘필름 오페라’라는 새 양식을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2003년 레지오 감독과 같이 한 ‘균형 잃은 삶’ ‘변형 속의 삶’으로 내한했던 그는 1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장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