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출신들의 ‘해결사 놀이’

입력 2016-02-18 21:07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토지매입회사 T개발은 2010년 5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토지 272㎡의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기존에 이 토지를 실소유하고 있던 이는 국가안전기획부 대공정책실장 출신인 임경묵(71·구속)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이었다. 명의상 소유자는 임씨의 사촌동생인 임모(65·구속 기소)씨였는데, 부동산 등기부에 명시된 거래가액은 4억7560만원이었다.

하지만 T개발이 실제 임씨에게 건넨 돈은 이보다 2억원 많은 6억7560만원이었다는 사실이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2006년 시세보다 헐값에 계약했다고 생각한 임씨 형제는 T개발의 잔금 지급이 늦어지자 추가금까지 받아내기로 공모했다. 임씨 형제는 T개발 측에 “세무조사를 받게 하겠다”는 압력을 행사해 결국 웃돈을 뜯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 2014년 ‘정윤회 문건’의 진원지로 지목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박동열(63)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해결사’로 동원됐다. 2008년 9월 박 전 청장(당시 대구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은 친분이 있던 임 전 이사장으로부터 행신동 토지 매매대금을 받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박 전 청장은 T개발이 매입한 토지를 관할하는 삼성세무서장 2명에게 이 부탁을 전했고, 동생 임씨와 T개발 대표 지모(43)씨의 만남이 성사됐다.

지씨는 “다른 토지주들과 형평성 문제”라며 추가금 요구를 거절했다. 지씨를 다시 만난 임씨는 사촌형의 지위를 들먹이며 겁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 형이 과거 안기부 고위직 출신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도록 만든 1등 공신이다. 차기 국정원장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운영 건설사가 세무조사를 받게 하겠다”고도 했다.

임씨의 압박은 2009년 9월까지 서너 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이듬해 3월 박 전 청장이 국장으로 있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은 T개발을 포함한 지씨의 운영회사 2곳을 세무조사했다. 임씨의 엄포가 허풍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씨는 겁을 먹게 됐다.

세무조사 착수 이후 지씨를 다시 찾아간 임씨는 “형에게 부탁해 세무조사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매매잔금과 추가금 2억원 지급을 재차 요구했다. 지씨는 이번에는 웃돈 2억원을 얹어 행신동 토지 매매잔금을 치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최성환)는 특가법상 알선수재, 공갈 혐의로 임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임 전 이사장은 구속만기일인 19일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19일 박 전 청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진술을 듣기로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