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알선수재 ‘파기환송’… 檢과 13년 싸움 승리

입력 2016-02-18 21:09
박지원 의원이 18일 재판을 마치고 대법원을 나서며 지지자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윤성호 기자

무소속 박지원(74) 의원이 ‘기사회생’했다.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저축은행 금품수수 사건에서 사실상 무죄확정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냈다. 끊길 위기에 처했던 정치생명을 이어가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8일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의원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실상 모두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의원직을 유지하고 20대 총선에도 출마할 수 있게 됐다.

박 의원은 2010년 6월 전남 목포 지역구 사무실에서 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대표에게 수사 관련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유일한 증거는 오씨의 진술이었다. 오씨는 “박 의원을 단독으로 만나 청탁하고 현금이 든 봉투를 탁자에 두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관 한모씨는 “당시 면담 자리에 동석했고, 돈 주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쟁점은 상반된 두 증언 가운데 어느 쪽에 신빙성을 두느냐였다. 1심은 한씨 증언에 힘을 실어 무죄를, 항소심은 오씨 진술에 더 신빙성이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1심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씨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해서 곧바로 오씨 진술에 신빙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씨 진술과 관계없이 오씨 진술을 입증할 객관적 정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1심이 살폈던 정황이 오씨 증언과 배치된다고 봤다. 이미 알선수재로 수감생활을 했던 박 의원이 별다른 친분이 없는 오씨에게 돈을 받는다는 점은 부자연스럽고, 비슷한 시기 더 친분이 있었던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건넨 2000만원을 거절한 점, 오씨의 소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면담 전에 합법적으로 받은 후원금 300만원까지 돌려준 점 등을 고려했다.

이밖에 대법원은 박 의원이 2008년 임석 전 회장과 2011년 임건우 전 보해양조 회장으로부터 각각 2000만원과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1·2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로 박 의원은 검찰과 13년간 이어온 악연에서 다시 승기를 잡게 됐다. 2003년 박 의원은 ‘대북송금’ 사건으로 구속됐다. 현대그룹에서 대북사업 편의를 봐 달라는 청탁과 함께 150억원을 받은 혐의였다. 대검 중수부는 이듬해 SK그룹과 금호그룹에서 총 1억원을 받은 혐의를 추가로 기소하며 기세를 올렸다. 1·2심 모두 징역 12년을 선고해 박 의원의 패색이 짙어보였다.

하지만 대법원 파기환송심을 거쳐 150억원 뇌물수수 혐의는 무죄로 확정됐다. 이때도 금품공여자의 진술 신빙성이 문제였다. 결국 1억원 알선수재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을 확정 받았다.

박 의원은 1년4개월 남짓 수감생활을 하고 2007년 2월 잔형면제사면을 받았다. 2008년 1월 특별복권되면서 정치생명을 이어갔다. 2009년부터 법제사법위원으로 활동한 박 의원은 ‘검찰 저격수’ 역할을 도맡았다. 박 의원은 선고 직후 “13년간 표적수사로 고초를 겪었다”며 “검찰과의 악연은 오늘로서 끊겠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