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기억교실’ 갈등] 참교육 장으로 남겨야 vs 이제는 학생에게 돌려줘야

입력 2016-02-19 04:03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참사의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 희생 학생들이 다녔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에는 당시 학생들의 사진과 화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민일보DB
전명선 세월호 유가족협 운영위원장
장기 단원고 학교운영위 위원장
3월이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세월호 희생 학생들이 다녔던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 역시 개학과 함께 새내기 301명을 받는다. 하지만 교실이 부족하다.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체취가 묻어 있는 10개 교실을 ‘기억교실’로 지정해 뒀기 때문이다.

개학을 앞둔 지금 이를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 있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일부 학부모들은 “억울하게 숨진 학생들의 원혼을 달래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기억교실을 계속 남겨둬야 한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신입생 학부모 등 재학생 학부모들은 “기억교실은 죄책감, 불안, 우울감 등의 심리적 불안감에 빠지게 만든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그 교실을 넘겨줘야 한다”고 맞서 있는 상황이다. 가슴 아픈 현실 앞에 어느 쪽 얘기가 맞는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쉽지 않다. ‘기억교실을 보존하자’는 유가족들과 ‘후배들에게 교실을 돌려주자’는 학부모들 이야기를 모두 들어봤다.

전명선 세월호 유가족협 운영위원장 “보존”

“교실 없애면 기억 잊혀져… 참교육의 장으로 남겨야”


“기억교실을 없애면 결국 억울하게 희생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잊혀지게 됩니다.”

전명선(사진) 세월호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원론적 부분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도 기억교실은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 위원장은 “250명의 꽃다운 아이들이 꿈도 펴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열두 분 선생님들도 안타깝게 떠났다. 이들이 가장 많이 생활했던 공간을 영원히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실을 없애는 것 자체가 나중에는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억교실은 그대로 존치해 안전교육장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게 유가족들의 입장이라고 했다.

전 위원장은 “남겨둔다는 것은 학생들의 꿈의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라며 “우리들은 너무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기억교실 존치를 통해 학생들이 끊임없이 안전을 돌이켜볼 수 있을 것이고 정부도 각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억교실, 그 공간 자체야말로 안전교육, 참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전 위원장은 재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러나 기억교실을 없애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족한 교실은 증축을 통해 확보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전 위원장은 “416기념관(기억교실 존치) 안을 만들면서 부족한 교실 증축 필요성을 제기했다”며 “안을 낼 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증축에 필요한 재원은 도교육청이 제안한 민주시민교육원 건축비용 100억∼120억원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올해 신입생들이 사용할 교실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교무실과 학부모운영위원회실 등을 간이 건물로 옮기고 그 공간을 교실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 위원장은 “선생님과 학부모가 불편하겠지만 이 문제가 늦어도 올해 안에 결론이 날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언급했다.

재학생들의 학습 분위기 보장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기억교실과 마주치지 않도록 동선을 조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벽을 이용하거나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과 차단하고 외부에서만 교실을 볼 수 있도록 하면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위원장은 재학생 학부모와의 갈등에 대해 “대화의 장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유가족이 교육청에서 재학생 가족과 단원고 선생님들에게 대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지려 했으나 무산됐다”며 “충분한 소통의 공간이 없어 이러한 갈등의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단원고를 추모 공간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고 생생한 안전교육의 현장으로 남겨야 한다”며 “그래야 희생 학생이나 선생님의 공간도 의미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단원고가 명문학교가 되고 좋은 학교가 되길 바란다”며 “갈등의 장만 부각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신입생들의 학업 거부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장기 단원고 학교운영위 위원장 “환원”

“신입생 301명 공부 어디서… 이제는 학생들에 돌려줘야”


“기억교실은 이제 수업 공간으로 돌려줘야 합니다. 재학생들이 수업을 해야 하는데 기억교실을 남겨놓으면 잃는 게 더 많습니다. 추모 공간과 수업 공간이 공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장기(사진) 학교운영위원장은 1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가족들께서 깊이 헤아려 나머지 재학생들이 맘껏 뛰놀며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길 바란다”며 “이제는 재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기억교실을 하루속히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 기억교실을 만들어 추모하고 기억하는 사업에 대해선 적극 돕겠다”며 “4·16 세월호 참사는 너무나 슬픈 사건이지만 기억교실 존치는 국민적으로 공감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억교실을 리모델링해 학습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위원장은 “방과후학습은 지금도 하지만 옆에 추모교실이 있으니 학생들이 복도를 오가다 매일 보게 되고, 야간 자율학습은 하지 못하게 됐다”며 “그러다 보니 단원고가 전국 최하위 등급의 학업성취도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분위기를 바꿔 학생들이 뛰놀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선 기억교실 리모델링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계속 기억교실 존치를 주장하면 학교를 아예 폐교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며 “이제는 재학생 학부모 의견을 적극 알리고, 도교육청에도 우리 요구를 관철시키도록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위원장은 “우리는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하며 참아 왔는데, 이제는 한계 상황이다”며 “이러다간 우리 학생들의 미래가 죽는다. 이를 막기 위해 과감히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억교실을 그대로 두면 신입생들이 갈 곳이 없게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유가족 측 제안을 잘 알고 있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며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학생들 공부는 상관없이 유가족 마음을 헤아려서 존치시키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고 언성을 높였다.

장 위원장은 “도교육청에서 구성한 특별대책위원회에 참여했는데 재학생 가족의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유가족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상황도 있었고, 그 이후로는 아예 참여도 안 했다”고 유가족들과의 갈등 상황을 전했다.

그는 “희생된 학생들과 교사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그대로 있다면 수업하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선생님이 편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희생된 250명 학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당연히 존치시켜야겠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위원장은 “교육청이나 유가족협의회 및 관계기관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 재학생들에게 다른 학교 학생들과 동일한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피우지 못한 꽃을 후배들이 잘 피울 수 있도록 적극 보살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안산=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