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살풍경하다. 개성공단의 기계 소리는 멈췄고, 대신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22의 굉음이 귓전을 때린다.
4차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잇따른 북의 도발을 응징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실력행사가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중단보다 더욱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고,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거의 모든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할 태세다. 뿐만 아니라 자위적 차원의 핵무장론이 힘을 얻고 있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도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북한은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강성대국’에라도 진입한 것 마냥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 하긴 우리도 갖고 있지 못한 위성발사체 기술을 가졌으니 괜한 허풍은 아니다. 중국은 북의 도발에 대한 자위적 조치인 한·미 무력시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환구시보는 북한과 인접한 동북지방에 군사력을 증강하는 등 최악의 한반도 상황에 대비한 군사적 대비를 주장했다. 또 CCTV는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둥펑 21D 미사일 발사 훈련 영상을 내보내며 중국의 군사력을 과시했다. 곧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살얼음판이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고, 5·24 대북 조치도 여전히 유효한 마당에 북의 추가 도발을 응징하는 수단으론 이보다 상징적인 게 없다. 이번 조치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군사적 대응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정에 관한 국회연설’에서 “북한의 도발에 굴복해 퍼주기식 지원을 하는 일도 더 이상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자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쓰였는지는 논란거리나 개성공단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달러가 김정일·김정은 정권에 흘러들어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한 해에만 1320억원이, 지금까지 총 6160억원이 달러로 현금 지급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에만 민감하고, 북이 우리에게 제공한 반대급부에 대해선 관심을 갖는 이가 많지 않다.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 평균임금은 150달러 수준이다. 남한에서 최저임금으로 1명을 고용할 비용으로 개성공단에선 10명을 채용할 수 있다.
언어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양질의 노동력을 국내의 10분의 1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곳은 여기 말고 세계 어디에도 없다. 토지도 마찬가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4년 말 펴낸 ‘개성공단사업 10년 평가와 발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부터 10년간 개성공단에서 거둔 경제적 효과는 남한 32억6400만 달러(약 4조원), 북한 3억7540만 달러(약 4530억원)로 우리 측이 훨씬 컸다. 개성공단이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과 토지라는 각자의 비교우위 생산요소가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거둔 상생의 모델이라는 게 통계상으로도 증명된다.
문제는 북한보다 더 큰 이득을 포기하면서까지 빼든 박근혜정부의 대북 제재 칼날이 김정은 정권을 벨 수 있느냐에 있다. 개성공단 중단에 이어 해외 북한 식당 이용 금지, 대북 인도적 지원 중단 등 정부의 후속 제재 조치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개성공단에 비하면 식당 이용이나 인도적 지원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비용은 애들 과자값도 안 되는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수단까지 동원해야 하는 정부의 처지가 안쓰럽기도 하다. 보수든 진보든 역대 어느 정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지 못했다. 정권의 성격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대북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여의춘추-이흥우] 제재의 칼은 빼들었는데
입력 2016-02-18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