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남중] 또 다시 가만히 있으라?

입력 2016-02-18 17:38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게 남아있기는 한가?”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이병헌의 유명한 대사다.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보면서 그 대사가 생각났다. “미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게 남아있기는 한가?”

개성공단은 그렇게 간단히 날려버릴 만한 게 아니었다. 60년 넘게 그 후진 냉전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겨우 심어놓은 한 포기 미래였다. 남과 북, 진보와 보수, 주변 4강과 한국 사이의 그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갈등 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한 평의 합의였다.

그러므로 개성공단은 본래 취약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논리, 안보의 논리, 갈등의 논리로 본다면 개성공단을 닫아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런데도 10년 넘게, 진보 정권에서 보수 정권으로 바뀌고 나서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은 유지돼 왔다. 그 세월 우리는 무모했던 것일까? 그 문을 닫는 게 과연 용기였을까?

박근혜정부는 지난 10일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그 직전에 북한의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가 있었다. 결정은 전격적이고 단호했다. 그 후로 우리는 전쟁, 북한 붕괴, 핵무장 등을 운운하는 얘기를 듣고 있다. 한반도의 공기는 갑자기, 그리고 확연히 달라졌다. ‘급변침’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개성공단은 ‘평형수’ 같은 것이었을까?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 연설에서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월급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는 전날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개성공단 임금이 핵 개발에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 것과 어긋나지만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북한이나 군사, 외교 문제 등은 시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중대 사안이지만 소수의 손에 맡겨져 있다. 비밀과 속도를 요구하는 사안의 특성상 그렇게 다룰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문제는 그 소수다. 통일부 장관이라면 그 소수 중에서도 핵심인데, 그의 말이 오락가락한다. 증거가 있다더니 하루 만에 없다고 말을 바꿨고, 그 말은 다시 하루 만에 대통령 연설에서 뒤집혔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그 소수에게 우리의 안위를 맡겨야 하는 걸까? 박 대통령은 이런 의문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연설 그대로 임금이 전용된 게 맞고 추후에 그 증거가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질문은 남는다. 통일부 장관이 처음에 임금 전용 증거가 있다고 말했을 때 제기됐던 질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개성공단 임금이 핵 개발에 사용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았는가?

박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불가피하다, 이번 기회에 북한을 바꿔놓겠다, 우리 내부로 칼끝을 돌리고 내부를 분열시키는 일은 안 된다, 국정에 협조해 달라, 그런 얘기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와 그 후로 커지는 전쟁 위기감 속에서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믿고 따르라”고만 하고 있다.

2년 전 그날, 배가 가라앉는데도 아이들은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어라”는 선내방송을 믿고 따랐다. 아마도 그 아이들은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알고 싶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원들은 모두 선실 바깥에 있고, 아이들의 질문은 스피커 너머로 전달되지 않았다. 선내방송은 “가만히 있어라”만 반복했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