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바보 이반의 나라를 통해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방법을 말해주었다. 그 나라엔 군인도 없다. 악한 이웃 나라가 쳐들어와도 도무지 대항하지 않는다. 군인들이 거칠게 약탈하자 자신들이 가진 물건을 순순히 내어줄 뿐만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당신들이 사는 나라는 살기 어려운 모양인데 여기 와서 같이 사는 게 어때요?”라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약이 오른 침략자들이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지만 이반의 사람들은 “필요하면 원하는 것을 가져가면 되지 왜 우리들을 괴롭히는 거예요?”하며 슬퍼할 뿐이었다. 이웃 나라의 군인들은 의욕이 꺾여 돌아가 버리고 만다. 결국 가장 오래 지속되고 행복한 나라는 바보 이반의 나라였다.
톨스토이를 스승이라 부르며 존경했던 간디는 이 말도 안 되는 단편소설 속의 비현실적 싸움 방법을 현실적 삶에서 실현했다. 요하네스버그 집단 거주지를 ‘톨스토이 농장’이라고 이름 붙이고 비폭력과 담대함, 육체적 노동과 검소한 삶을 규칙 삼아 따르게 했다. 그것은 침략자요 지배자였던 영국과의 정치적 투쟁 과정에서도 적용되었다. 간디는 ‘아힘사(비폭력)’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사티아그라하(진리추구)’를 실천적 지침으로 했다. 그에게 아힘사 없이 사티아그라하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하고 평화로운 방법이 필수라는 것이다. 결국 영국은 물러갔고, 인도는 독립되었다. 간디는 인도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대중에게 존경받는 ‘마하트마(위대한 영혼)’가 되었다.
재임 때 바보 이반 이상으로 멍청하다는 조롱과 비웃음을 받았던 헬무트 콜 서독 수상은 냉전시대의 격렬한 대결상황 속에서도 계속 손해를 보며 동독과의 협력관계를 강화시켜 나갔다. 동독 지역주민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 3대 1로 교환해야 적절하다는 마르크화 화폐가치를 1대 1로 교환해 통합하는 정책을 실행하기도 했다. 마침내 1990년 10월 3일 동독과 서독은 다시 하나의 국가가 되었고 2개월 뒤 통일 후 첫 총선에서 그의 기독교민주당은 과반을 훌쩍 넘는 압승을 거뒀으며 콜은 통일 독일의 첫 총리가 되었다. 그는 세계에서 민주적 투표로 당선된 총리들 중 최장기 집권자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사람들의 생각과 실천은 모두 성경의 예수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우리는 성경의 상식이 일상에서 몰상식으로 취급되는 것을 너무나도 자주 보아왔다. 그러나 성경의 상식을 일상에 끌어들이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 된다. 적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이기는 방법의 선악은 싸움의 승패보다 더 중요하다. 악한 방법을 쓸 때에는 승리했다고 해도 실패지만 선한 방법을 쓸 때는 비록 패했다 하더라도 성공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을 싸워야 하지만 그 싸움의 주체가 되는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선한 나’는 패배해도 ‘옳은 나’다. 그러나 ‘악한 나’는 승리해도 ‘나쁜 나’일 뿐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말미암아 야기된 현재의 한반도 국면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발표에 북측의 남측 인원 전원추방과 자산동결이 이어지고 다시 남측이 단전·단수로 대응하면서 북측 군부대 재배치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이 단계라면 경제제재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의 포기까지 나아간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주민들이 이 엄동설한에 전기가 끊기고 마실 물까지 얻을 수 없다면 그 어떤 명분도 선한 것으로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인도주의를 포기한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 얻는 승리에 무슨 가치나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성경은 말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유장춘(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바이블시론-유장춘] 승패보다 중요한 것
입력 2016-02-18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