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작가 김원일(74)씨가 문단 데뷔 50주년을 맞아 소설집 ‘비단길’(문학과지성사)을 냈다. 1966년 ‘1961·알제리’를 발표한 그의 8번째 소설집이다. 책은 단편소설 ‘어둠의 혼’ ‘미망’,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 ‘불의 제전’ ‘아들의 아버지’ 등 대표적인 작품과 맥을 같이 하는 소설들로 채워졌다.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6·25전쟁과 분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집스러울 정도다. 그만큼 그가 벗어날 수 없었던 삶의 자장이다. 수록된 7편 대부분이 그 자장 안에서 몸소 겪거나,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를 채집해서 버무렸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에 머물기를 자처하며 시대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 그 자리를 맴도는 어머니, 그리고 맏아들.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다. 이는 사적 체험에 기인한다. 실제 작가의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인민군이 철수할 때 월북한 인물이다. 그런 아버지에 관한 기억의 흔적은 소설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내 다시 꼭 올께. 두 애 데리고 같이 나설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하고 떠난 남편이 해방불명 된 사건(‘난민’), 북에서 재혼한 아버지가 새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남북이산가족신청을 하고 수절한 어머니를 비롯한 남한의 가족과 금강산에서 상봉하는 이야기(‘비단길’), 북한에서 열리는 남북학술토론회에 가게 된 평론가 아들이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아버지의 나라’) 등등.
모두 체험으로 획득한 독보적 감각이 빚어낸 결과물들이다. 뉴스 속 사건으로 접했을 때는 우리가 몰랐던, 폐부를 찌르는 곡진함이 있다. 이산가족상봉만 해도 그렇다. 상봉을 통해 평생의 소원이 이뤄진 것으로 대개는 생각한다. 하지만 만나서 더 아픈 게 이산가족이라는 아이러니를 소설 속에서 대면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소설 ‘비단길’은 60여 년 전 헤어졌던 아버지를, 남편을 만나는데 허용된 시간이 “불과 하루에 한 두 시간, 그것도 이틀로 끝내고 다시는 만나지는 못할 각자의 처소로 다시 떠나는 것”이 얼마나 고문 같은 고통인지를 이야기 한다. 소설 속 어머니는 남편을 상봉한 후에 돌아와 결국 치매에 걸린다. 만남 뒤의 고통이 더 커서 일 게다. 남편을 만나고 싶은 어머니의 간절함은 사막의 실크로드에 보드라운 비단이 깔린 꿈을 꾸는 것으로 표출된다. 비단길 꿈이야말로 현재진행형의 숙제라는 걸 각성케 하는 게 이 소설의 힘이다. 공교롭게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남북한 대치정국이 더 심해진 시점에 책이 나왔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北으로 간 아버지와 기억의 흔적
입력 2016-02-18 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