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이다. 어릴 적 ‘상원’이라 하여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명절이라고 배운 적은 있지만, 한 번도 명절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고유의 명절이다. 설날이나 추석에는 명절음식도 해먹고 멀리 떨어진 가족들도 모이는데 대보름엔 고사리 같은 흔히 먹던 나물반찬에 슈퍼에서 땅콩, 호두, 밤이 담긴 망사주머니를 단돈 오천 원에 사다 나눠먹는 것이 가정집 부럼 의식의 전부였다.
오늘에야 직접 축제 일을 해보니 잠자고 있는 한국의 문화 요소 중에 가장 안타까운 숨은 콘텐츠가 대보름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콘텐츠로서의 파급력, 풍부한 스토리텔링, 세시풍속의 다양성, 달집태우기 같은 놀이 요소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축제인데 지역별로 간간이 명맥만 이어가는 수준이니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새해 첫 달을 맞으러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달맞이놀이, 달의 집을 만들어 불태우며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 등 대보름에 관한 세시놀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섬세하고 창의적이다.
특히 대보름 의식 중 몇몇은 웬만한 소설책보다 참신하고 시처럼 낭만적이다. 새벽녘 동네 우물에 드리운 보름달을 바가지로 떠오면 큰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는데 우물가의 보름달이 용의 알처럼 보인다고 해 ‘용알뜨기’라고 불렀고 불을 피워 하늘의 달을 태운다 하여 ‘달끄시르기’라고도 불렀다. 발음도 어렵지만 발상이 동화처럼 순수하다. 이밖에도 쥐불놀이, 실싸움, 다리밟기, 귀밝이술, 액막이 연날리기 등 보름에 즐기는 놀이는 엄청나게 많은데 그 풍부함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그나마 최근 정월 대보름 의식들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분위기라 천만다행이다. 작은 마을 단위에서 자생적 의식들이 늘고 있는데 부디 액운을 막아주고 풍요를 선사하는 대보름이 명절다운 명절로 만세를 누리면 좋겠다.
유경숙(세계축제연구소 소장)
[축제와 축제 사이] <8> 정월 대보름
입력 2016-02-18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