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 ‘수출’… 신산업으로 ‘활로’ 찾는다

입력 2016-02-18 04:00

정부가 17일 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표한 투자 활성화 대책이 기존 대책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수출’이란 말이 전면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수출이 쪼그라들고 있는 위기 상황을 생각하면 의아할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신 이날 투자 활성화 대책과 별도로 ‘새로운 수출동력 창출을 위한 민간의 신산업 진출 촉진 방안’을 보고했다. 기존 주력 품목 대신 5대 소비 품목 수출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신산업 투자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 정보통신과 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주력 수출 품목이 현재 상태로는 회복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경기 부진과 유가 하락 등 대외적 요인이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 뾰족한 수가 없음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가 이날 회의에서 보고한 수출 관련 대책은 기존에 선정한 화장품·의약품·농수산품·패션의류·생활유아 등 5대 소비재를 중심으로 수출 증가폭을 높이고 이를 통해 전체 수출 추가 감소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들 5대 소비재 품목은 대부분 내수 중심이다. 중소·중견업체가 포진해 있다. 이들 기업을 지원하고 온라인 수출 지원 체계 등을 개선한다는 것은 기존에도 있던 정책들이다.

우리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보통신기술(ICT)·석유화학·조선·자동차 등 주력 품목의 수출 지원책은 완전히 사라졌다. 산업부는 “주력 품목의 수출이 줄어드는 추세가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만 언급했다.

정부의 이 같은 변화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단순 지원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석유화학·조선·철강업종 등은 저유가로 인한 장기 부진 상태에 빠져 있는 데다 중국발 공급 과잉까지 겹쳤다. 그나마 우리 수출을 이끌어 왔던 휴대폰·반도체·디스플레이 등 ICT 주력 제품들마저 줄줄이 부진에 빠졌다. 지난 1월 ICT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8%나 급감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연속 수출이 감소한 가운데 감소폭마저 커지고 있다.

수출이 줄어드는 것은 대외 여건 악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한국 수출 정책이 그동안 주력해온 생산 품목에만 초점을 맞춰오면서 글로벌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ICT 부문이나 자동차 부문 등은 이미 중국산 저가 제품의 빠른 추격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태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도 최근 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에서 “최근 수출 부진은 대외 여건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주력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대체 산업 창출도 지연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이날 수출 진흥 대책 대신 신산업 진출 방안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미 수출 감소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산업 진출 방안으로 단기간에 이를 만회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수출 감소로 인한 주요 제조업체들의 부진이 계속될 경우 내수 활성화 정책도 힘을 받기 어렵다. 고용 위기 역시 더욱 커질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산업을 육성하고 새로운 경쟁력을 찾자는 것은 중요한 판단”이라면서 “그러나 오랜 기간 수출 기업에 의존해온 경제 구조상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한국경제 전반에 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특단의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