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대부분 노인인 경비원들을 내보내고 출입구 자동문 등 ‘스마트 보안시스템’을 설치하느냐, 분리수거 같은 잡일을 도맡아주는 데다 해고되면 재취업이 어려운 경비원들을 계속 고용하느냐. 두 의견이 갈려 갈등을 빚어온 서울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결국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됐다.
“일단 집에 가야지 뭐. 나이 일흔이나 돼가지고 서글퍼. 주민들은 그래도 내가 계속 근무하기를 바라는데….”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4년째 경비원으로 일하는 박모(71)씨는 곧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다. 29일이면 박씨가 속한 경비용역회사가 이 아파트와 맺은 계약이 끝난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스마트 보안시스템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아파트 정문과 후문, 각 동에 무인출입문을 설치해 경비원을 대체하는 시스템이다. 관제소에서 CCTV와 모니터로 출입을 통제한다. 용역회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장비가 없어 입찰 자격 자체가 안 됐다. (우리 경비원) 몇 명이라도 살려 달라 했는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보안시스템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홍역을 앓아 왔다. 주민들은 ‘노인 경비원’ 대신 CCTV, 모니터, 무인출입문을 설치하자는 쪽과 경비원들이 다른 일도 많이 하니 없으면 안 된다는 쪽으로 갈라져 있다. 주민 김모(51)씨는 “그래도 경비 아저씨가 있는 게 마음이 놓인다. 기계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지 않으냐”고 했다. 44명 경비원은 2개조로 나눠 24시간씩 교대로 근무한다. 경비 업무 외에 쓰레기 분리수거, 택배 관리, 아파트 주변 정리 등을 맡고 있다.
갈등의 골은 제법 깊다. 입주자대표회의는 2014년부터 스마트 보안시스템을 추진하며 두 차례 주민투표를 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그러자 스마트 보안시스템을 아파트 장기수선계획에 포함시켰다. 이를 알게 된 일부 주민들은 “이미 두 차례나 주민들이 반대한 사업을 이런 식으로 추진해도 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항의가 거세지자 입주자대표회의 김모 회장은 지난달 세 번째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그리고 지난 1일 “660가구 중 406가구가 동의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아파트 곳곳에 붙였다.
반대 측 주민들은 절차상 문제를 지적했다. 주민들은 “대면 동의조사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고, 아파트 선관위를 통한 공정한 투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동의 철회서’를 만들어 배포했고 90명이 동의를 철회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그대로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주민투표, 반대, 강행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됐다. 반대 주민 39명은 지난 15일 ‘보안시스템 설치 결의는 무효’라며 김 회장을 상대로 서울남부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반대 주민을 비방하는 글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하기도 했다.
소송을 낸 주민 김승현(32)씨는 “수사기관이 알아내야 할 부분이 크다. 김 회장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배경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입주자대표에게 집중된 권한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회장은 “비용 절감을 위해 효율적인 보안시스템이 필요하다. 절차상 문제는 전혀 없다. 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17일 이 아파트 곳곳에는 입주자대표회의 이름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글·사진=김판 기자 pan@kmib.co.kr
스마트 보안 vs 경비 아저씨… ‘경비원 해고’ 놓고 갈등 법정으로 간 아파트 주민들
입력 2016-02-18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