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부터 “담합 소지” 논란… 꼬이는 은행 ISA
입력 2016-02-18 04:03
은행들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다음 달 14일 출시를 앞두고 일임형 ISA는 취급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사 예·적금 상품도 포함시켜 달라는 더 중요한 요청은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대안으로 은행끼리 ISA 계좌에 상품을 넣어주는 상부상조식 다자교환을 구상하고 있지만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한 담합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들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담합했다고 결론 내리고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은행끼리 머리 맞대나=은행업계 고위 관계자는 “ISA의 스와프(맞교환거래)도 담합이 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실제로 공정위의 레이더에 걸릴 소지가 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ISA 관련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당국에 자사 상품 편입을 허용해 달라고 건의했지만 안 된다고 하니 은행끼리 상품을 교환하는 일종의 공동협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단 고객에게 유리한 쪽으로 금리가 높은 곳을 골라 넣어주는 식으로 운용해야 한다”며 “일정 한도를 정해놓고 A은행에 예금이 많이 쏠렸다면 다음 달에는 (A은행의) 고시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은행들이 매번 협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은행 한 곳에만 상품을 몰아줄 수 없는 만큼 은행끼리 나눠먹기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 경우 공정거래법상 담합 소지가 있다. 공정위는 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른 공동행위라도 업계 내부에서 별도의 합의가 있는 경우 담합으로 판단하고 있다. CD금리의 경우에도 금융 당국의 발행물량 조정 요구에 맞춘 것을 공정위는 담합으로 판단한 바 있다.
◇일임형보다 더 절실한건…=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발표한 ISA 활성화 방안에서 은행이 일임형 ISA를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ISA 계좌에 자사 예·적금을 편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은행권의 핵심 건의사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ISA는 한 계좌 내에 예·적금과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은 상품으로, 신탁형과 투자일임형으로 나눈다. 신탁형은 투자자가 운용사에 직접투자 요청을 하는 반면, 일임형은 전문가가 만든 투자 포트폴리오를 선택해 투자한 후 상품 편입과 교체를 일임하는 게 특징이다.
일임형이 더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 은행은 이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더 간절했던 것은 자사의 ISA 계좌에 자기 은행 예·적금을 팔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 유치한 ISA 계좌의 돈을 다른 증권사나 은행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신탁형 ISA에 자사 상품 편입을 허용하면 불공정거래로 이어질 수 있어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일임형 ISA 준비도 허둥지둥=금융 당국이 허용한 일임형 ISA 판매도 은행들은 내심 달갑게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당국이 은행의 투자일임업자 등록시기를 다음 달 말까지로 늦춰놨기 때문이다. 이미 투자일임업자로 등록돼 있는 증권사들은 당장 다음 달 14일부터 신탁형과 일임형 ISA 상품이 모두 출시 가능하지만 은행은 일단 신탁형부터 출시해 놓고 일임형 판매는 당국의 등록 승인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는 은행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그동안 신탁형 상품 출시를 준비했던 은행들은 일임형 상품 준비가 부족해 멘붕(멘탈붕괴) 상태”라고 전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