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안한 지인·후배 허위로 내세워 인건비 꿀꺽

입력 2016-02-17 21:20

한국농어촌공사 본사 소속 과장 A씨와 차장 B씨는 2012∼2014년 농경지 중금속 오염실태 조사사업을 수행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인들과 대학 후배 등 8명을 일용직 근로자로 허위 등록해 각자 계좌로 인건비 8263만원을 받게 했다. 두 사람은 인건비 중 1273만원을 ‘계좌 대여비’ 명목으로 가짜 인부들에게 나눠준 뒤 나머지 6990만원은 자신들이 챙겼다.

감사원 감사에서 A씨와 B씨는 이 돈을 현장운영 경비와 장비 구입비, 회식비, 접대비 등 공적인 용도로 썼다고 끝까지 우겼다. 특히 A씨는 챙긴 돈 4770만원 중 식대를 계산하고 현금영수증을 끊은 776만원을 제외하곤 나머지 돈의 사용처를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경북지역본부 7급 직원 C씨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지하수 영양조사용역 등 8개 사업의 현장감독 업무를 보조하면서 수영동호회에서 만난 지인 등 8명을 허위 인부로 등록했다. 현장감독관의 책상 서랍에서 도장을 몰래 꺼내 찍어 서류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인건비 6051만원을 부당 지급토록 했다. C씨 역시 가짜 인부 8명에게 계좌 대여비 1063만원을 주고 나머지 4988만원을 챙겼다.

집행되지 않은 사업비를 가로챈 사례도 있었다. 경기지역본부 차장 D씨는 2014년 1월 저수지 개·보수 사업의 정산업무를 담당했다. 시공업체 간부가 “일용직 인부를 고용하지 않아 사회보험료가 남았으므로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D씨는 이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D씨는 서류에서 사회보험료 항목을 삭제하고 공사비 명목으로 1987만원 더 지출한 것처럼 꾸몄다. 그러고는 업체 관계자를 따로 만나 2000만원을 받아냈다.

D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이 돈을 “부서공통비로 썼을 뿐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돈을 개인카드로 썼을뿐더러 유흥주점에서 17회에 걸쳐 927만원을 쓴 내역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D씨는 감사원 감사 직전 가짜 인부들을 만나 “실제 일을 한 것처럼 거짓 답변을 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충남지역본부 차장 E씨는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지인의 명의로 업체를 설립한 뒤 이 회사가 3년간 16억원 상당의 수주를 받도록 도와줬다. 그러곤 사업수익금 명목으로 2억9000만원의 뒷돈을 받아 챙겼다. 그는 이 돈으로 유흥비와 아파트 분양 계약금, 중고차 구매비 등 개인 용도로 썼다.

이처럼 직원들의 비위행위가 도를 넘었음에도 농어촌공사 내부통제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17일 지적했다. 농어촌공사는 2011∼2014년 일용직 인부 1만7394명을 고용해 290억3300여만원을 집행하면서도 투명한 채용·관리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특히 농어촌공사 내부 감사실은 2014년 “가짜 인부에게 돈이 지급되고 있다”는 민원을 접수했지만 일부 개인의 일탈행위로 치부한 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