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2016년 개막작은 한국과 프랑스의 합작 연극 ‘빛의 제국’(3월 4∼2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이다. 한국의 대표적 소설가 김영하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20년간 서울에서 살아온 북한 간첩이 귀환 명령을 받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하루를 다뤘다. 분단 현실을 내부의 한국인이 아닌 외부 이방인의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국립극단은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의 예술감독 아르튀르 노지시엘에게 연출을 맡겼다. 노지시엘은 영화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연출기법으로 프랑스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유명 연출가다.
17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열린 ‘빛의 제국’ 기자간담회에서 노지시엘은 “원작소설을 읽으면서 한국의 분단 현실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역사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세대를 거치며 전달된다는 점에서 ‘빛의 소설’은 단순히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보편적이 이야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각색을 통해 원작과는 색깔이 많이 다른 작품이 됐다”며 “특히 원작소설이 파고든 기억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간직하는 매개체인 몸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진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극 중 인물과 배우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두 개의 스크린이 걸린 녹음실을 배경으로 배우들은 극 중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한편 배우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이야기하게 된다. 2014년부터 여러 차례 방한한 노지시엘은 국립극단의 ‘길 떠나는 가족’을 보고 배우 지현준을 ‘빛의 제국’ 주인공 김기영으로 곧바로 캐스팅했다. 김기영의 아내이자 운동권 출신 자동차 영업사원 장마리 역으로는 문소리를 낙점했다.
영화 ‘박하사탕’ ‘오아시스’ ‘다른 나라에서’를 통해 문소리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문소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연극 ‘교실 이데아’ ‘슬픈 연극’ ‘거기’ ‘광부화가들’에 출연한 바 있는 문소리는 이 작품을 계기로 약 6년 만에 무대로 돌아오게 됐다.
기자간담회에서 문소리는 “무대에 돌아오면 치료를 받는 느낌이다. 내가 사람에 대해 정말 차가워져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무대에 돌아와서야 깨닫는다”면서 “연극할 때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생긴다. 무대란 배우에게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곳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연출가, 동료 배우들과 같이 밥 먹고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며 “진작 이런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현준은 “소리 누나가 직접 전을 부쳐오는 등 음식을 싸가지고 온다. 배우들이 식구처럼 함께 알아가는 시간을 보낸 게 무대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서울 공연 이후 5월 17∼21일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에서 프랑스어 자막을 더해 무대에 오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삶 변화시킨 분단현실, 인류 보편적 이야기”… 韓·佛 합작 연극 ‘빛의 제국’
입력 2016-02-17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