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공무원 갑질

입력 2016-02-18 04:07
울산광역시 A자치구는 민원인이 2014년 12월 말 지상 4층 다가구주택(8가구) 건축허가 신청을 하자 일주일 만에 불허 통보했다. 건축허가를 제한하려면 시·도지사에게 요청해 주민의견을 청취하고 상급행정기관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 법령상 근거가 없는데도 ‘신청지역에서 다가구주택 6가구 이상은 불허한다’는 단체장의 지시를 이유로 불허한 것이다.

충북 B시 상수도담당 공무원 C씨는 2014년 3월 시청이 발주하는 토목공사를 수주할 목적으로 직원 5명이 공동 출자해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대표는 C씨의 조카가, 이사는 남동생이, 사외이사는 남동생의 아내가 맡았고 이 회사는 이후 B시가 발주하는 공사 18건(4억4700여만원)을 수주해 수익금을 나눠가졌다.

이처럼 법령을 위반해 인·허가 처리를 지연하거나 직권을 남용해 기업활동을 방해하고 부당이득을 취한 지자체 공무원들이 행정자치부 감찰에서 무더기로 적발됐다. 행자부는 지난해 9∼10월 전국 25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규제개혁 관련 특별감찰을 실시한 결과, 68건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17일 밝혔다.

행자부에 따르면 경기도 D시는 물류회사가 신청한 숙박시설 용도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했다가 소송 끝에 2014년 1월 대법원에서 ‘재량권을 일탈·남용하거나 정당한 근거 없이 이뤄진 것’이라는 이유로 패소했다. 확정 판결에 따라 건축허가를 내 줘야하는데도 D시는 이후 1년8개월이 넘도록 재처분을 하지 않았다.

강원도 E군은 2012년 토석채취 허가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민원을 규정보다 441일이나 지연 처리했다. 연장 대신 신규허가를 신청하라고 해 이를 따랐는데도 처리하지 않았고 인사이동으로 담당자가 바뀌면서 인수인계가 안돼 허가기간 만료일을 불과 2개월 앞둔 2014년 5월에야 허가했다.

경기도 F시 공무원 G씨는 시의 보조금을 받는 사회단체 단체장 선거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이 당선되자 단체 활동을 방해했다. 보조금심의위원회 의결을 통해 결정된 보조금을 마음대로 삭감하고 정당하게 입주해 있던 사무실에서 강제퇴거할 것을 명하기도 했다.

경북 H군은 하수처리시설 수탁업체에 위탁사업비를 적게 지급해 인건비 등 1억3400만원을 전가시켰다. 영농사업 대행기관이 주관한 해외여행 참여경비 300여만원을 업체에 전가한 공무원들도 적발됐다.

행자부는 이번 감찰에서 적발된 공무원 106명에 대해 해당 자치단체에 징계를 요구하고 민원인에 주지 않은 지원금과 이자 등 5억800만원을 지급하도록 조치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주민들의 반대 등을 핑계로 정당한 민원을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관행에 따라 부조리를 행하는 공무원들이 여럿 확인됐다”며 “사례집을 배포해 자치단체들이 자체 감찰을 강화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