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문학동네’의 이름은 정겹다. 인기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이 소환한 그 시절 풍경처럼 골목을 품는 ‘동네’는 거대한 도시문화가 가질 수 없는 개방성을 특징으로 한다.
“특정한 이념에 구애됨이 없이 문학의 다양성이 충분히 존중되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문학동네가 1994년 창간사에서 표방한 가치도 모두에게 열린 골목의 개방성에 다름 아니다. ‘창비(창작과비평사)=문학의 사회적 실천’ ‘문지(문학과지성사)=미학적 전위’로 양분되던 문단의 진영 논리를 벗어나 문학적 외연을 확장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초기에 창비와 문지에 끼지 못하는 신인을 불러내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진영 논리의 배제는 엉뚱하게도 상품성이 있다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는 상업적 가치 추구의 근사한 포장이 됐다.
안도현 시인은 지난 연말 언론 기고를 통해 문학동네를 극찬한 바 있다. 이 출판사에서 낸 어른동화 ‘연어’로 대박을 내고, 오너와 동창인지라 칭찬은 낯간지럽다. 어쨌든 그는 작가와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선인세를 지급하는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고, 매출의 15%를 책 광고에 쓰는 적극적 마케팅을 높이 평가했다. 모든 건 양면적이다. 선인세만 해도 태어나지도 않은 원고를 ‘입도선매’함으로써 작가군의 특정 출판사 쏠림현상을 낳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다양성의 가치가 문학의 상업화, 대형화와 함께 훼손될 수 있는 것이다.
문학동네의 상업적 감각은 탁월하다. 문학평론가 서영인씨에 따르면 계간 문학동네는 자사 출판물 비중이 유난히 높다. 문학동네가 주는 문학상은 주로 미출간 원고를 대상으로 한다.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져 수상의 후광 효과를 보는 셈이다.
지난여름 문단은 신경숙 작가의 표절논란으로 들끓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로 확전됐다. 문제의 책이 창비에서 나왔지만 문학동네와 문지가 문단 권력으로 몰매를 맞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문학평론가 권성우씨는 ‘영혼 없는 주례사 비평’이라는 표현을 쓰며 문학동네야말로 ‘신경숙 신화화’에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 출판사는 인적쇄신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 즈음 국민일보가 쓴 기사에 대해 문학동네는 소송을 제기했다. 오너가 형제 사이인 자음과모음, 문학동네에서 각각 여성 대표가 탄생했거나 예정돼 있다(‘문학계 형제 출판사에 나란히 40대 여 대표’·2015년 9월 8일자)는 내용이다. 유리 천장을 뚫은 전문직 여성의 약진에 방점이 찍힌 기사였다. 문학동네는 ‘표절 논란으로 잡음을 낸 바 있는 문학동네’라고 표현한 부분, 출판시장이 어려운 만큼 두 오너 형제가 출판은 내부 전문가에게 맡기고 다른 식으로 활로를 모색할 것이라고 분석한 대목 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법원은 최근 이 기사가 명예를 훼손했다는 문학동네 측 주장은 이유 없다며 기각해 버렸다.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는 개념이 있다. 소송에 따른 상대방의 비용 부담과 심리적인 위축을 노린 것으로,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사전에 막기 위해 악용되곤 한다. 문학동네는 인터넷판을 통해 부분적으로 반론권을 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중재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채 법정으로 달려갔다.
허윤 변호사는 “전략적 봉쇄 소송은 정치와 경제권력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쓰던 수법”이라며 “표현의 자유, 비판적 사고에 젖줄을 대고 있는 문학 출판사가 답습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단권력으로 지탄받았던 문학동네가 ‘이번 소송은 새로운 권력의 갑질’이라는 세간의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손영옥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내일을 열며-손영옥] ‘문학동네’와 문화권력
입력 2016-02-17 17:29 수정 2016-02-29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