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1시, 인천 중구 도원동 숭의공구상가단지의 한 건물 1층부터 2층 계단까지 긴 줄이 늘어섰다. ‘사랑 나눔터’라는 팻말이 적힌 이곳은 인천제2교회(이건영 목사)가 운영하는 노숙인 복지시설이다. 매주 화·목·금요일 점심시간이면 인근 지역의 노숙인 15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
배식을 30분 앞둔 주방에선 갓 지어진 흰쌀밥과 북엇국, 제육볶음이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고 있었다. 주방장 조건식(68·여) 권사는 “찬바람 맞으며 오가는 어르신들의 건강을 고려해 오늘은 골다공증과 고혈압에 좋다는 세발나물을 준비했다”며 반찬통을 힘껏 들어 올렸다.
교회가 조건 없이 이웃을 섬기는 공간이지만 섬김만 받고 그냥 돌아가는 이는 드물다. 노숙인들은 배식줄 끝자락에 놓인 저금통에 저마다 준비한 동전을 넣었다. 한 달 전 아프리카 잠비아의 초등학교 건립을 돕기 위해 가져다놓은 저금통이다. 박복래(84·여)씨는 “오늘은 100원짜리 두 개를 넣었다”며 “여기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인 정성으로 속이 꽉 찬 저금통에선 ‘땡그랑’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사랑 나눔터’가 위치한 건물 주변은 조성된 지 30년 넘게 인천을 대표하는 공구상가단지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거치며 그 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각종 건설 공구상과 철 가공 부품 업체 등 200여개가 골목골목을 지키고 있다. 인천제2교회는 숭의로터리를 꼭짓점으로 삼각뿔 모양의 구역에 늘어선 공구업체와 인천중앙여자상업고, 인천시립도원체육관에 둘러싸여 있다. 1948년 세워진 교회는 인천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라는 뜻에서 ‘인천제2교회’란 이름으로 68년을 지역 사회와 함께 해왔다.
교회는 건물 외부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복합예술 공연장이나 박물관으로 착각할 정도로 외관이 아름답다. 건물 내부 모습은 더 놀랍다. 1층 안내표시판에는 목욕탕, 교육센터, 어린이도서관, 헬스장 등 “여기가 교회 맞나”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시설이 가득하다.
이 중 6층에 자리 잡은 삼일특수교육센터는 대기자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발달·지적·뇌병변 장애 등을 가진 어린이들을 위한 언어, 놀이, 미술, 인지, 특수체육 치료가 이뤄진다. 복도에서 아들의 치료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영주(49·여)씨는 “엄마들 사이에서 값비싼 민간 치료 기관보다 교육 프로그램도 좋고 교사 만족도도 높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며 “다른 기관의 한 과목 치료비로 서너 과목을 치료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교육센터 담당자인 최인희(46·여) 집사는 “정부 지원 없이 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성도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며 “성도들의 후원헌금으로 장애아동 치료비의 65%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7층 ‘꿈나래 도서관’은 인천 중구에 세워진 제1호 어린이 도서관이다. 현재 장서는 1만700여권. 연중 세 차례 500여권씩 신간 서적을 들여온다. 매주 화요일부터 주일까지 어린이·청소년 독서지도 프로그램, 옛이야기 들려주기, 주부 독서동아리, 빛그림 상영, 전래동화 인형극 공연,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인형극 동아리 ‘꿈나래’의 막대인형극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여덟 살, 다섯 살 남매를 데리고 일주일에 두세 번 온다”는 우선희(37·여)씨는 “책도 많지만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돼 아이들이 놀이터보다 도서관을 더 찾는다”며 웃었다.
이 밖에도 교회에는 반월공단, 시화공단 등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치과 진료실과 미용실이 있다. 또 주민들을 위한 헬스장과 농구장 등 지역사회의 발걸음을 끌어모으는 공간들이 가득하다. 그동안 노숙인과 지역 어르신들이 자주 이용하던 목욕탕은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3월부터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이건영 목사는 “교회가 마련한 공간과 시설들은 이용자의 대다수가 교회 외부 사람들”이라며 “그 공간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천제2교회 이건영 목사의 나눔목회 이야기
봉사는 교회 설립 초기부터의 전통 예배당 규모 줄이고 열린 교회로
올해 만 64세인 이건영(사진) 목사는 인천제2교회에서 56년의 세월을 보냈다. 27년은 교인으로 29년은 목회자로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이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키웠다.
‘관계 중심의 공동체교회’를 지향하며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도모하는 교회 문화는 오랜 교회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대 담임목사인 고 이승길 목사는 한국전쟁 직후 남편을 잃은 여성과 이들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교회 안에 ‘마르다 모자원’을 세웠다. 소외된 이웃들이 모여 삶의 희망을 품었던 모자원 사역은 교회가 지역사회의 아픔을 끌어안은 첫걸음이었다.
2대 담임목사였던 이삼성 원로목사는 70년대 당시 드물던 교회 유치원을 열었다.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의 질을 높였고 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인천 주변 지역은 숨 가쁘게 변했다. 많은 이들이 주변 신도시로 떠났고, 관련 기관과 시설도 자리를 옮겼다. 교회가 있던 지역은 점점 문화 혜택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남았다. “교회 주변 지역의 상황은 안 좋아졌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니 오히려 교회가 지역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 겁니다.”
2010년 새 예배당을 건축하며 지역사회를 향한 사역의 지향점을 더 분명히 했다. 주 중에도 주민에게 열린 교회,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교회를 지향한 것이다. 과감하게 4000석 규모의 예배당을 1700석으로 줄였다. 그 대신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확보했다. 완공된 예배당에선 어린이 도서관,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센터, 노숙인과 어르신을 위한 목욕탕,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치과와 미용실, 헬스장 등에서 21가지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교회 신축 과정에서 자주 생기는 지역 사회와의 갈등도 없었다. 4300여평(12,900㎡)에 달하는 예배당 공사가 진행되는 2년간 인근 공구상가단지와 학교 관계자, 주민들은 단 한 차례 반대나 항의 시위를 벌이지 않았다. 이 목사는 “오랫동안 지역을 향한 교회의 사랑을 주민들이 알아준 것 같다”며 “이 모든 사역은 성도들의 자발적이고 전적인 동참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인천=글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전호광 인턴기자
[한국의 공교회-인천제2교회] 장애 어린이 돌봄·목욕탕 제공 등 섬김 사역만 21가지
입력 2016-02-17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