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소병원 외과 교수의 얘기다. 암 수술을 잘하는 의사이지만 근래 들어 암 수술 건수가 부쩍 줄었다고 한다. 사정은 이렇다. 수술로 완치를 장담하기 어려운 환자는 다른 대형병원으로 보내라는 병원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높은 수술 성공률을 유지하기 위해 소위 그 수치를 반감시키는 어려운 케이스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라는 의미다. 또 수술을 해서 오히려 병원 재정에 적자를 내는 환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과 교수는 이런 사정을 기자에게 말하며 “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때 보호자에게 “수술이 어렵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의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가족들은 이내 환자를 유명 대형병원으로 데리고 가면서도 크게 슬퍼한다. 완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환자의 가족을 덮친다. 슬픔을 넘어선 불안과 좌절로 가족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또 보호자는 환자를 살려줄 명의가 누구인지 백방으로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는 와중에 환자는 홍보인지 의학정보인지 알 수 없는 인터넷 정보에 휩쓸리기도 하고 최신 의학보다 민간요법에 빠질 수도 있다. 외과 교수는 “수술 난이도가 높은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못하고 다른 대형병원을 보낼 때 마음이 너무 착잡하다”면서도 “이 문제는 중증의 환자를 수술할수록 적자를 보는 잘못된 의료수가체계와 3차병원을 손쉽게 갈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말했다.
김모 환자는 최근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책과 인터넷, 입소문으로 명의를 찾아보고 명의가 있다는 서울아산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해당 교수 얼굴을 보려면 3개월을 더 기다려야했다. 진행이 느린 갑상선암일지라도 환자 마음은 느긋할 수 없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병원 다른 교수에게 진료를 보기로 했다. 수술을 잘하는 병원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첫 진료를 봤다. “당장 수술해야한다”는 의사의 말에 환자는 더 다급해졌다. 그러던 중 본래 만나길 희망했던 명의를 만나는 날이 잡혔다. 그가 애당초 지목한 명의는 직전에 만난 의사와는 다른 의견을 냈다. 당장 수술할 필요가 없고, 심지어 1년 더 기다리자고 했다는 것이다. 환자는 “똑같은 병원인데 의사간에 의견이 이렇게 다르나 싶었다”고 말했다. 한 병원에서 정반대의 소견을 듣고 불안해진 김모 환자는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앞 사례에서 외과 의사는 고령의, 중증의, 고난이도 수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병원의 속사정도 모른 채 환자와 보호자는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만 듣고 명의들이 있는 서울 대형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상업화된 의료계가 병원 유목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신 의학과 경험이 결합한 게 의술이라 갑상선암 같은 최신 암은 의사의 소견이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믿고 찾아간 병원에서 ‘나만의 명의’를 찾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떠돌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환자는 왜 소견이 다른지 정확히 묻고, 의료진은 환자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지 도와줘야한다. 불안에 떠밀려 무조건 다른 병원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환자 스스로도 결정을 내려야한다. 우리 사회는 병원 쇼핑을 다니는 환자의 행동만 나무랄 게 아니라 왜 병원 유목민이 만들어졌는지 들여다 봐야한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병원쇼핑 나서는 환자 탓 하지말고 병원유목민 만드는 현실부터 바로잡자
입력 2016-02-21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