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2분쯤 흐른 뒤 A연애학원 김모(38) 대표가 입을 열었다. “외모는 크게 문제가 없네요. 평균입니다.” 다급히 물었다. “그럼, 왜 연애를 못하는 걸까요?” 1시간가량 기자의 연애사를 들은 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소개팅 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많은 이성과 만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보세요. 약간 어눌한 말투부터 고칩시다.”
연애가 어려운 시대다. 취업난에 시달리며 결혼·출산 등 많은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에게 연애는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학점과 스펙에 몰두하는 이 세대는 어떤 이성을 만나야 하는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깜깜한 이들이 많다. 익숙한 건 사교육이어서 이들을 겨냥한 ‘연애학원’이 성업 중이다. 서울에만 10곳이 넘는다.
학원서 배우는 ‘연애의 기술’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A연애학원의 문을 열고 B씨(20)가 들어섰다. 대학생인 그는 헤어진 여자친구와 다시 만나고 싶은데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와 상담한 김 대표의 분석은 이랬다.
①이른바 ‘나쁜 남자’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는 여자친구는 착한 남자를 원했고, ②연애를 처음 해보는 B씨와 만났지만 금세 싫증을 느꼈다. 학원과 연계된 미용실에 들러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하고, 여자친구에게 매일 보내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중단한 뒤 반응을 지켜보자는 진단이 이어졌다.
이런 학원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까. 연애에 서툰 20∼30대 학생과 직장인 50여명이 매달 학원 문을 두드린다. 매일 10∼15통씩 상담전화도 걸려온다. 대부분은 ‘평범한 청춘’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한 뒤엔 악착같이 일하던 청춘들이 한숨 돌리니 외로운 거죠. 짝을 찾고 싶은데 어디서 만날지, 어떻게 만날지 모르고 친구에게 물어보긴 부끄러우니 학원에 오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무엇을 가르치고 알려줄까. 가장 보편적인 프로그램은 카카오톡 메시지 분석이다. 수강생은 이성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화면캡처 파일 20장을 학원에 제출한다. 그러면 연애 경험이 풍부한 강사가 상대방의 글과 대화 패턴을 분석해 호감도를 살핀다. 이를 토대로 호감을 얻기 위해 어떤 표현, 어떤 농담을 어느 시점에 보내야 하는지 조언한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문 오는 속도가 느리거나 단답형이면 호감도가 낮은 것이다” “이모티콘 사용 여부와 패턴도 호감도 측정의 기준이 된다” “‘빨리 만나고 싶다’ ‘너를 좋아하는 거 같다’ 등의 성급한 메시지는 호감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등의 조언과 함께 상대방에 맞는 ‘카톡연애’ 요령을 알려주는 식이다.
소개팅을 앞두고 실전 연습을 해보는 ‘스피드 데이트’ 프로그램도 있다. 학원에 소속된 이성 ‘데이트 코치’를 상대로 소개팅처럼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코치는 재미있는 농담에는 웃고, 대화가 끊기거나 지겨워지면 표정을 찌푸리는 등 연기를 한다. 모의 소개팅이 끝나면 고객의 장단점, 표정과 의상 등을 점검해준다.
간단한 마술, 의상 컨설팅, 화술 수업을 합친 ‘연애실전 종합반’도 있다. 4주 동안 집중교육이 이뤄진다. 김모(24)씨는 “대학 입학 전까지 ‘모태솔로’였고, 신입생 때 만난 여자친구와는 금세 헤어졌다. 연애학원에 다니면서 말투와 자신감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지금은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매쟁이’로 나선 지자체·기업체
연애 못하는 청춘을 위해 지자체,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과 민간단체 등이 ‘중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이 주최하는 소개팅 행사는 항상 ‘만석’이다. 세종시는 지난해 5월 공무원, 공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83명이 참여했고 커플 9쌍이 탄생했다. 세종시는 5월에 두 번, 11월과 12월에 한 번씩 모두 4차례 단체 미팅을 주선했다.
인구복지협회는 기차를 타고 떠나는 미팅여행 ‘굿바이 솔로 트레인’ 행사를 주최했다. 경북 풍기역을 거쳐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여정 동안 남성 48명, 여성 48명이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금수저’를 위한 특별한 소개팅도 있다. 신한은행은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 3억원 이상을 맡긴 고객의 자녀를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소개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VIP 고객 대상의 커플매칭 서비스는 2003년 하나은행이 처음 선보인 뒤 은행권에 빠르게 확산됐다.
‘취준생’(취업준비생)이 취준생을 위한 만남의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취준생 정성은(28·여)씨가 마련한 소개팅이 열렸다. 참석한 남녀 24명은 정씨의 페이스북을 통해 모였다. 정씨는 “자연스럽게 만날 공간이 없어 직접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며 “사회에서 소외된 취준생 대다수가 연애를 포기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세태 기획] n포 세대 “나도 짝을 찾고 싶다”… 학원서 배우는 ‘연애의 기술’
입력 2016-02-17 04:01 수정 2016-02-17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