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가 확 달라졌네… 신세경·김혜수·박민영 3인3색 여주인공 캐릭터

입력 2016-02-17 04:00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에는 전형성이 존재한다. 수많은 여주인공이 가진 것 없지만 미모와 착한 마음씨로 부유하고 멋진 남자를 사로잡는 신데렐라형이나 캔디형으로 분류된다. 때론 여걸형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남자 주인공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민폐형 캐릭터가 나오기도 한다.

남주인공과 달리 여주인공이 입체적인 캐릭터를 갖는 일은 흔치 않다. 예쁘거나 화끈하거나 짜증나는 인물로 요약된다. 하지만 최근 인기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를 보면 ‘틀에 박히지 않은 모습’인 경우가 많다. 배경이 없어도 기죽지 않는 자존감,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갈 만큼 진취성, 마냥 착하고 온순한 여성성에 갇혀있기 보다 욕망도 있고 근성도 있는 여주인공들이 사랑받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16일 “전형적인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이다보니 작가들도 이 함정에 쉽게 빠진다.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많이 나올수록 서로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육룡이 나르샤’ 신세경(분이 역)=사극 속 여성은 특히나 대부분 전형적인 인물로 나온다. 장희빈이나 장녹수처럼 표독스럽거나, 인현왕후처럼 온화하거나, 동이처럼 해맑은 캐릭터 정도로 나뉠 수 있다. 조선시대 여성상을 그리는 다수다 보니 대체로 수동적이거나 뒤에서 누군가를 조종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신세경이 연기하고 있는 분이는 독특하다. 고려 말 핍박받던 백성을 대변하는 분이는 영리하고 판단력이 뛰어나다.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지만 손놓고 끌려 다니지 않는다. 다부진 표정으로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며 맥없이 당하기만 하는 백성들을 추스른다. 그래서 골목의 민초들은 그를 “분이대장”이라고 부르며 따른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도 수동적인 여성들과 다르다.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엄마(전미선)와 대척점에 서는 것도 감당한다.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남성인 정도전(김명민)이나 이방원(유아인)에게 의견을 말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사극에서 평범한 백성, 그것도 여성이 비중 있는 역을 맡는 일은 드물다. 지금까지 분이는 언젠가 후궁이 된다거나 왕비가 되는 등 ‘임금의 사랑을 받아 신분 상승을 하는 여성’이 아닌 것으로 그려져 왔다.

육룡이 나르샤의 여성들은 모두 능동적이고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고려를 쥐락펴락했던 비밀 조직 ‘무명’의 수장도, 고려 말 최고의 검사인 척사광도 여자다. 훗날 원경왕후가 되는 민다경은 이방원이 사랑하는 분이의 명민함을 인정하고 서로 돕는 사이다. 사극에서 새로운 여성상을 풀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시그널’ 김혜수(차수현 역)=김혜수를 3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불러들인 차수현은 강력계 20년 경력 여형사다. 1995년 형사기동대 최초 여형사로 출발해 강력계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차수현은 변화가 흥미로운 캐릭터다. 시그널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전개되는데 스무 살 풋풋했던 차수현과 20년 경력의 노련한 형사 차수현의 대비가 재밌다. 순경으로 처음 형사기동대에 들어온 차수현은 분홍색 이불을 싸 짊어지고 왔다. 선배들에게 자발적으로 커피를 타주다가 “다방 레지냐”는 타박도 듣고, 스마일 스티커를 들고 다니는 귀여운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강력계 물을 먹으며 달라졌다. 사명감 넘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책임감 강한 형사가 됐다. “수갑 인생에 남자 여자가 어딨어”와 같은 말을 하면서 몸을 사리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첫사랑 이재한(조진웅)을 잊지 못하고 찾아다니는 순애보도 보인다.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조카들의 괴롭힘에도 꿋꿋이 잠을 자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까지 김혜수의 차수현은 다채롭다.

◇‘리멤버-아들의 전쟁’ 박민영(이인아 역)=극 초반 이인아는 비중이 큰 인물은 아니었다. 주인공 서진우(유승호)를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 정도였다. 예쁘고 어리바리한 법대생으로 처음 등장하며 다소 우려스럽기도 했다. 앞 뒤 생각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거나, 좌충우돌 하는 모습이 ‘민폐형 여주인공’의 전형성과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 이인아의 활약상이 커지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찾아가 법조인이면서 여성의 입장에서 위로하고 격려해 법정으로 이끌어내면서 극 중 절대 악으로 등장하는 남궁민(남규만 역)을 위기에 빠뜨린다. 사려 깊은 여성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강하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민영의 호연도 이인아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