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셀프 페인팅은 진행 중

입력 2016-02-16 17:32

세상에서 가장 익숙하고 아늑함을 느끼는 공간이 집이다. 잠을 자고 식사를 하며 일상을 누리는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바깥세상에서 돌아와 신을 벗자마자 우리 집이 최고라며 일단 소파에 푹 파묻히거나 길게 한 번 누워 긴장했던 몸을 풀 수 있는 곳. 그런 집을 잘 꾸미고 싶은 욕구를 반영하듯 그 공간을 채울 가구나 소품을 직접 나무를 깎아 취향에 맞게 만들거나 셀프 페인팅으로 집 꾸미기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고 해서 나도 셀프 페인팅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좋은 친환경 페인트도 찾았고,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칠하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동영상, 페인팅 후기도 많이 있어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니 마음에 드는 색이 너무 많아 고민하고 있던 차에 모임이 있어 방문했던 집이 온통 흰색으로 꾸며진 집이었다. 에게해의 화산섬 산토리니 이아마을의 파란색과 하얀색의 산뜻하고 강렬한 조화가 떠올랐다. 코발트블루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화사하게 서 있는 하얀색 건물들. 유레카! 흰색이야.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공간도 더 넓어 보이고 집안에 햇빛이 드니 흰색이 섬세하게 빛을 반사하며 후광효과를 내듯 집안에 있는 다른 색들을 마치 팔색조처럼 화사하게 빛나게 해주었다. 청결한 흰색에 초록식물도 더 싱싱하게 보였다. 모든 색과 조화를 이루어 배색이 절로 되는 착한 색상이라니.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양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같은 흰색이라도 차이가 느껴지는 오묘함마저 있다.

인공의 색과 자연의 빛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감성을 느끼게 하며, 흰색이 어떤 색과 이웃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주며 그 집의 조화를 이끌고 있었다. 그와 같이 빛을 발할 나의 공간을 꿈꾸며 다음 날 바로 셀프 페인팅을 위한 모든 것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페인트통의 뚜껑도 열지 못한 채 몇 달의 시간이 흘러갔다. 덜컥 구입해 놓고 엄두가 나지 않아 미루적거리고 있으니 나의 화사한 공간, 완성될 수 있을까.

김세원(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