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지만 휴가는 가물에 콩 나듯 쓴다. 초과근무 기록을 올리면 대휴를 갈 수 있지만 암묵적으로 초과근무를 올리지 않는 분위기다. 연차휴가가 15일에 이르지만 지난해 6일밖에 쓰지 못했다.
권씨만이 아니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숨겨진 노동시간’에 숨이 막히고 있다. 일하는데 쓰이지만 정작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이 시간은 보장되지 않는 휴식, 사용하지 못하는 연차휴가 등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15일 ‘직장인의 휴게시간과 휴가 사용실태’ 보고서를 내고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연차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40분도 안 되는 ‘쉬는 시간’=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양모(27·여)씨는 쳇바퀴 돌 듯 3교대로 일한다. 근무시간은 ‘낮 근무’(오전 7시∼오후 3시) ‘저녁 근무’(오후 2∼11시) ‘밤 근무’(오후 10시∼오전 8시)에 따라 구분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1시간∼1시간30분 더 일한다. 끝없이 환자가 몰리는 대학병원의 특성상 ‘칼퇴근’을 할 수 없다. 출퇴근시간까지 포함하면 양씨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쓸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끼니조차 챙기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 김 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들의 하루 휴게시간은 30.2분에 불과하다. 한 달에 점심을 거르는 횟수는 5.5회나 된다.
간호사뿐만이 아니다. 직장인들의 1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44.1시간인데 점심시간을 포함한 하루 평균 휴게시간은 39.6분에 그쳤다.
◇10일도 못 가는 연차=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유급휴가를 보장받은 임금노동자는 10명 중 6명 정도(60.6%)에 불과하다. 이마저 정규직(89.2%)만의 이야기다. 비정규직은 10명 중 2.5명 수준인 24.8%만이 유급휴가를 갈 수 있다.
그런데 유급휴가를 준다고 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사업체 규모별로 연차 사용 실태를 조사했더니 평균 8.5일(전체 연차 중 57.8%) 쓰는 데 그쳤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지난해 서비스산업 종사자 2만2920명을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이들의 평균 연차 사용일수는 10.6일(전체 연차 중 64.7%)에 불과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온라인 여행업체 ‘익스피디아’가 지난해 26개국 9273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우리나라 응답자의 연차 사용일수는 6일이었다. 반면 독일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30일에 이르렀다.
김 연구위원은 해법으로 ‘휴게시간의 유급화’를 제안했다. 그는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을 노동에 필요한 시간으로 인정하고 노동시간에 포함해 전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연차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여름휴가제’ 입법도 제시했다. 근로기준법은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인정한다. 이 대상이 되지 못해도 1주일의 여름휴가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