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개성공단 자금 전용 ‘증거’ 확보 사실을 번복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위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포석으로 여겨진다. 개성공단 재가동 영구 불가 등 남북관계의 퇴행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의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됐던 자금 전용 문제의 신빙성이 훼손되면서 정부 결정에 대한 신뢰도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남북관계를 관장하는 통일부 장관이 한 입으로 두 말 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 명확하게 설명을 해 달라”고 묻자 자금 전용의 증거는 없다고 했다. 개성공단 자금의 70%가 북한 노동당 서기실과 39호실 등으로 흘러들어가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는 있지만 ‘자금 전용’을 증빙하는 ‘증거’는 없다는 말이었다. 홍 장관은 뒤이어 나경원 새누리당 외통위원장에게도 재차 증거가 없다고 확인했다.
정부는 홍 장관이 오해를 바로잡고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금 전용 우려가 있는 북한 상황에 대한 자료를 언급한 게 마치 자금 전용 증거로 와전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홍 장관은 “빨리 바로잡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시인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의 결정적 근거에 대해 ‘중언부언(重言復言)’한 것은 단순 실수로만 치부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2013년 ‘게임체인저(game changer)’란 평가를 받았던 북한의 3차 핵실험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강력한 독자 제재는 시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남북관계의 전면적 단절을 선언할 정도로 ‘단호한’ 대처를 하고 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보수 진영의 ‘단골’ 공격 소재였던 개성공단 자금의 ‘군자금화’였다.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 폐쇄는 제재 수단이 아니라고 부인해왔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류가 기대에 못 미치자 결국 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불과 사흘 만에 “관련 증거는 없다”고 또 물러서면서 남북 경협사업 전체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가졌던 국민들에게 허탈감만 안긴 셈이다.
정부가 이처럼 ‘신중론’으로 돌아선 것은 일단 직면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끼칠 영향 탓으로 보인다.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위반 사실을 자인할 경우 역효과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이를 인정할 경우 향후 남북 간 경협사업 전반을 재개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개성공단 자금의 전용 사실을 인정한 이상 어떤 경협사업도 결의안 위반이라는 혐의를 쓸 게 분명해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파장을 줄이기 위한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관측도 있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 대해 찬반이 팽팽하고, 야당이 ‘근거검증’을 벼르는 상황에서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 탓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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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15 22:08